[아시아투데이=유정원 워싱턴특파원] 워싱턴DC는 벚꽃에 파묻혀 있다. 포토맥 강변이나 타이들 베이슨 호숫가를 구태여 갈 필요도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양옆으로 늘어선 벚꽃나무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심지어 동네 길가 여기저기서도 특유의 화사한 자태로 눈길을 유혹한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것들이 벚꽃나무였는지 몰랐다. 워싱턴 명물 가운데 하나가 벚꽃인지는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퍼져있을 줄이야. 벚꽃이 워싱턴을 뒤덮은 형국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기념품 가게에 가면 워싱턴을 상징하는 두 가지 로고와 마주친다. 판다 곰과 벚꽃이다. T셔츠에도, 머그컵에도 워싱턴이란 글자 위에 벚꽃이 피어있고 판다가 웃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고개를 갸우뚱 한다. 판다는 중국, 벚꽃은 일본 아닌가. 한편으론 ‘제국의 수도’답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미국 땅에 은밀히 쌓아 온 내공에 고개를 절래 흔들게 된다.
판다는 이미 예전에 워싱턴DC를 떠났다.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답례로 기증한 링링과 싱싱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2세대인 첸첸과 메이장도 벌써 고향으로 돌아갔다.
첸첸과 메이장 사이에서 출생한 타이샨은 미국 출생으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계약에 따라 2010년 귀국 비행기를 타야했다.
미국 전역에는 판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을 내건 중국 음식 패스트푸드 체인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간판에는 물론 재롱을 피는 판다곰이 그려져 있다.
판다 열풍은 판다가 없어도 식을 줄 모른다. 판다는 이별을 고했지만 미국인의 가슴에 사랑의 낙인을 찍어 놓았다.
워싱턴 벚꽃은 일라이자 시드모어라는 미국인 아주머니를 빼놓곤 말할 수 없다. 일본을 방문했던 그녀는 무려 1885년부터 줄기차게 벚꽃을 워싱턴DC에 심자고 주장했다.
그러다 1909년 당시 영부인이던 헬렌 태프트에게 벚꽃 수입에 대한 청원의 편지까지 썼다. 마침 일본에 머문 경험이 있던 헬렌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 놓칠 새라 일본의 미즈노 뉴욕 총영사가 2000그루의 벚꽃 나무를 도쿄 시민의 이름으로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나무들은 해충이 발견되면서 모두 불태워졌다. 일본은 다시 3020그루를 보냈고 2012년 2월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해 3월27일 태프트 영부인은 일본 대사 부인과 함께 벚꽃나무 식목 행사를 갖고 ‘미국의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된 장미를 대사 부인에게 전달했다. 바로 워싱턴 벚꽃 축제의 기원이다.
‘벚꽃 워싱턴 수송 작전’의 일등 공신인 시드모어는 죽어서도 일본의 야마테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올해가 워싱턴 벚꽃 축제 100주년이다. 예년엔 16일 정도이던 축제 일정이 장장 5주간으로 늘었다. 다음달 14일 퍼레이드를 중심으로 피크를 이룰 것이다. 미국은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산딸나무 3000그루를 일본에 증정했다.
미국인이 워싱턴DC를 가장 많이 찾는 때가 바로 벚꽃 축제 기간이다. 보통 1억2600만 달러 정도의 수익 효과를 거뒀지만 올해는 2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워싱턴 시는 기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일본 뉴욕총영사관의 항의를 받아들여 앞으로 독도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사실이 알려졌다.
돈보다 나름 우정을 선택하겠다는 것인지. 엄연한 영토인 독도를 놓고 제3자에게 선전을 해야 했던 입장에선 더욱 입맛이 쓰다.
하지만 벚꽃 투성이 워싱턴의 판다익스프레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꼭꼭 씹는 다짐이 있다. 앞으로 30년, 50년, 100년 후에 벌어질 독도 공방전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평범한 지구촌 사람의 ‘심정’을 움직일 ‘옳고 밝은 한국’을 캐내야 한다.
행사만 줄기차게 치루는 일회성 ‘깡통 외교’ 말고 21세기 내내 친근한 코리아를 각인시켜야 한다.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다. 나 한 사람부터 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