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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지키는 ‘친일파’ 이순신·세종대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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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기자

승인 : 2011. 04. 18. 09:11

'친일인사' 김경승 작품 안중근, 김구 동상 등도 논란
'친일인사' 김경승 씨가 만든 것으로 밝혀진 국회 청사내 세종대왕 동상(사진 왼쪽)과 이순신 동상. 
[아시아투데이=신현우 기자] 국회가 친일 독립유공자 19명의 서훈 취소 등 일제강점기에 수탈된 민족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친일파가 만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국회를 지키는 상징물로 설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아시아투데이'가 국회 본청 2층 계단에 설치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자를 알아보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경승 씨가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친일인사가 제작한 순국선열들이 국회를 지키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국회 사무처는 본지가 취재할 때까지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경승 씨는 민족문화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인사'로 등재돼 있다.

국회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미 2008년 동상의 왜색과 김씨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지만 국회사무처장 등이 바뀌면서 아직까지도 별다른 진전 없이 방치돼 있다.

본지 취재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국회 본청에 20여년 동안 설치돼 있는 세종대왕 동상도 같은 김씨 작품이라는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

대한민국 국회는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이후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해방 후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독립국' 대한민국의 핵심 국가조직이다.

이런 국회에 친일행적이 뚜렷한 김씨의 작품이 20여년간 버젓이 '수호신'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정통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이 회장으로 있던 ‘조선미술가협회’의 간부를 역임한 인물이라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밝히고 있다. 

그는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에 예술가단체 연락협의회를 구성해 전람회를 열고 수익금을 마련해 일제에 국방헌금을 바치는 등 조선인들의 일제 침략전쟁 동참을 독려했다.

김씨는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나는 이같이 중대한 사명을 위하여 미력이나마 다하여 보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은 애초 1970년대에 제작됐다가 1991년을 전후해 국회로 이전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중앙 현관 계단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국회 중앙 현관 계단은 국회의원과 국회출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통로로 국회 관람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친일행적이 뚜렷한 사람이 만든 동상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국회에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회의장에게 정식적으로 폐기를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도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왜색 문화를 이른 시일 내로 고쳐야 한다”며 “이순신 장군 동상 처리와 관련해 국회사무처가 예산 확보의 어려움, 작품의 가치적 측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대립 등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혔다.

국회사무처는 2008년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전문가들을 통한 고증 작업을 거치는 등의 노력을 보였지만 실제 2010년, 2011년 예산에 이순신 동상에 대한 처리 비용을 반영하지 않았다. 

당시 논의대상에서 빠졌던 세종대왕 동상에 대한 처리 문제도 당연히 아직까지 아무런 해결방안이 없는 상태다.

안병갑 국회사무처 사무관은 “이순신 동상에 대한 문제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세종대왕까지는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친일행적이 뚜렷한 사람이 만들었지만 국가 소유물이어서 폐기절차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폐기 처분에 대한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회사무처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일행적이 뚜렷한 사람이 만든 동상일지라도 작품의 가치적 측면을 먼저 판단한 이후 폐기 등의 처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동상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우러나와야 하는데도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난다”며 “전문가들이 작품의 가치적 측면을 논하기 이전에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 사무국장은 “국가기관이 먼저 나서서 이러한 부분은 처리해야 하는데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국회가 무반응, 무대책 자세에서 벗어나 공론화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평화통일자문위원을 지내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등의 동상을 만들고 미술계 원로로 활동했다.

김씨가 만든 안중근 동상은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설치돼 있다가 현재 철거는 됐으나 폐기되지는 않고 숭의여자대학교로 이관될 예정이다.

역시 김씨가 제작한 백범 김구 동상은 남산 백범광장에 그대로 존치돼 있다.
신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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