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규제가 만든 ‘지연의 구조’
보증료 인상까지…피해는 임차인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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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HUG가 운영하는 '전세금 시세 126% 이하 보증 제한'이 보증금 반환 지연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며, 현 제도가 실질적인 임차인 보호보다 HUG의 리스크 회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사기만을 탓하기엔 HUG의 구조적 문제와 규제 설계 실패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의원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는 1821건에 달했다. 이 중 약관상 지급 기한인 한 달을 초과한 사례는 1037건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했고, 6개월 이상 장기 미지급된 건도 152건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수개월에서 반년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대기하는 실정이다.
HUG는 보증금 반환이 지연되는 이유로 전세사기 급증, 임차인의 서류 미비, 연락 두절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환 구조 자체가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고 지적한다.
HUG는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을 위해 '세입자가 퇴거하고, 새로운 임차인이 전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 신규 임차인의 전세금이 주변 시세의 126%를 넘을 경우 보증 가입이 제한되면서, 집주인이 새 계약을 꺼리거나 체결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도 지연되거나 막히는 구조다.
126% 규제는 형식적으로는 신규 계약에 적용되는 기준이지만, HUG의 보증금 반환 구조가 신규 계약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존 임차인의 반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증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세입자가 아직 퇴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새 임차인을 들일 수 없는 규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구조가 세입자의 퇴거와 신규 임차인 유치에 연동돼 있다 보니, 시세의 126%를 넘는 계약은 신규 보증이 거절되고, 결국 기존 세입자도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반환이 지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HUG의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보증 성격의 물건을 적절히 판단하지 못하는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보증 시스템이 정부 정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지 않도록,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나친 규제로 인해 세입자가 들어갈 수 있는 집 자체가 줄어들고, 보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좁아지는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HUG는 올해 3월부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증료를 최대 37% 인상했다. 반환은 지연되고 보증료는 올라가면서, 임차인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보증에 가입했음에도 제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추가 비용까지 부담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적 취지와 현장의 괴리가 해소되지 않는 한, 보증을 믿고 계약한 임차인들의 피해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 교수는 "정책에 포퓰리즘이 개입된 채 상식적인 기준 없이 운영되면, 이런 구조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제도의 근본적인 실패"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