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보다 한결 무난한 웃음 선사
A24 제작 '헤레틱', 휴 그랜트 악역 변신 압도적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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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취하고 말에 질리는 '로비'
연구·개발에만 몰두해 온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은 4조원에 이르는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정부 관료인 최실장(김의성)을 상대로 접대 골프를 계획한다. 그러나 '창욱'의 오랜 라이벌이자 한 수위의 로비 실력을 지닌 '광우'(박병은)도 같은 날 같은 골프장에서 '최실장'의 아내이면서 상관인 '조장관'(강말금)을 골프로 구워삶으려 하는데….
배우가 아닌 '감독' 하정우의 뚝심은 그 자체만으로 인정해줄 만하다. 12년 전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에서 처음 시도했지만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말맛' 코미디에 다시 도전한 걸 보면,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와 스타일을 우직하게 파고드는 배짱이 엿보인다.
골프장이 주무대인 '로비'는 '롤러코스터'에 비해 소동극의 규모가 커지면서 슬랩스틱 코미디의 비중 또한 높아지고, 캐릭터들과 이야기의 현실감 역시 어느 정도 더해진 덕분에 평범한 관객들도 킥킥대며 감상하기에 어느 정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극 전반에 필요 이상으로 넘쳐흐르는 대사는 여전히 아쉽다. 매 장면마다 무조건 말로 한 번은 웃기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감독' 하정우에게 있는 건 아닌지 살짝 의심해보고 싶을 정도다. 이제는 말을 줄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관계로 빚어지는 좀 더 근본적인 수준의 부조리에 시선을 돌려보길 권하고 싶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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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더 천국으로 인도하겠다는 사명감에 가득 찬 여성 선교사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노신사 '리드'(휴 그랜트)가 사는 외딴집으로 향한다. 점잖은 외모의 '리드'는 "아내가 파이를 굽고 있다"며 이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인 뒤 종교와 관련된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극 초반부 등장인물들은 시종일관 형이상학적인 내용의 철학적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성질 급한 호러팬은 신경질을 내기 십상이지만, 조금만 견디면 밀실 스릴러로 바뀌면서 지옥도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볼거리는 휴 그랜트의 연기 변신이다. '이 배우가 내가 알던 '노팅 힐'의 로맨틱 가이가 맞나' 싶을 만큼, 이전과는 완벽하게 달라진 모습을 선보인다. 역대급으로 사악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란 찬사가 어울린다.
또 주류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촬영감독 정정훈이 수직과 수평으로 직조해내는 화면도 무척 인상적이다. '유전' '미드 소마' 등을 제작한 신흥 '호러 명가' A24의 신작답게 다소 뜬구름 잡는 식의 얘기를 훌륭한 연기와 만듦새로 풀어간 수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