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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 분)는 엘리트 은행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젊은 그는 이제 흉악범들의 집합소로 악명 높은 교도소 '쇼생크'에 갇힌 채 여생을 마감해야 한다. 수감된 직후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는 등, 재소자들과는 다른 출신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소외되고, 일상으로 벌어지는 폭력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그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런 앤디의 모습을 지켜보던 장기수 레드(모건 프리먼 분)는 그를 돕는다. 친구가 생기고 게다가 우연한 기회에 교도관과 교도소장의 세금 관계 일을 돕게 되면서, 소위 좋은 보직을 얻게 돼 수감생활에 안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내도서관에서 음반 자료를 정리하던 앤디에게 탈옥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 다가온다. 사회로부터 기증받은 음반 중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을 듣게 된 앤디는 무엇에 이끌리듯 교도소 구내 전체 방송으로 음악을 틀어버린다. 교도소 안의 모든 재소자는 넋을 잃고 아름다운 두 여성이 만들어내는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만 응시한다. 교도관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틀어 잠가, 꽤 오랜 시간 음악을 튼 도발의 끝은 무참한 폭력과 함께 장시간 독방에 감금되는 징벌뿐이다.
흉악범들로 득시글거리는 교도소 특유의 잿빛을 압도하는, 이태리 여성 소프라노들의 내용을 알 수 없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다. 이 장면에는 많은 영화적 장치로 넘쳐난다. 우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이 전복적이라는 점이다.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계몽 귀족으로 하인이자 친구인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로지나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룬, 알마비바 백작은 그 후속작 피가로의 결혼에선 완전히 돌변한다. 백작이 피가로와 결혼하려는 백작 부인의 몸종 수잔나의 초야권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한때 친구였던 하인 피가로는 물론 그의 아내 로지나 백작 부인을 배신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로지나 백작부인과 그녀의 몸종 수잔나가 가짜 편지를 써서 백작에 대한 응징을 도모하는 순간을 담은 곡이 바로 '산들바람 불어오며'란 여성 이중창이다.
교도소장은 앤디의 무죄를 알면서도 구명할 생각이 없다. 그는 오히려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토미라는 수감자를 살해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한다. 이에 앤디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치게 되고, 이후 복수를 결심하고 장기간에 걸쳐 이를 실행한다. 이중 회계장부를 작성해 교도소장의 비리를 낱낱이 정리해 놓고 교도소 하수관으로 이어지는 구멍을 수년에 걸쳐 뚫어 탈옥을 준비한다. 절묘하게도 피가로의 결혼에서 로지나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복수와 모티브와 겹치게 되며 해석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또한 음악이 교도소 내 스피커로 송출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이크 줄을 긴 호흡으로 따라가는데, 이는 마지막 앤디가 하수관의 긴 통로를 빠져나오는 신과 일치한다.
두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마이크 선을 따라 호른 모양으로 생긴 스피커로 빨려 나오듯, 앤디 역시 길고도 긴 하수도관을 통과해 마침내 바깥세상에 새롭게 태어나는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일종의 복선 장치로 배치된 편지의 이중창 신에서 또 다른 미장센은 앤디가 잠가놓은 문을 부수려는 교도소장과 교도관의 모습이 비친 창문에 블라인드의 실루엣이 겹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앤디가 미리 마련한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그들의 비리가 들통나 FBI에 의해 연행되는 장면에 대한 암시다. 배경이 되는 음악이며 미장센이며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우리는 '악당의 탈옥'이 아닌, 나약한 한 사람의 탈출극을 보며 전율을 느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제가 따른다. 주인공이 무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가 약자이지만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의 인물일 때다. 쇼생크 탈출은, 삶이라는 감옥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가치로서 진실은 끝내 밝혀지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라는 사필귀정과 더불어 인생, 나아가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불의와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응전하는 의지의 삶에 대한 역설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