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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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0명대 국가들의 공통점에서 해법의 열쇠가 있다. 한국(0.72), 홍콩(0.77), 대만(0.87), 태국(0.95), 싱가포르(0.97). 이들 국가는 놀랍도록 유사한 사회문화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과도한 도시 집중화다. 이들 국가는 모두 수도권 혹은 대도시에 인구와 자원이 극단적으로 집중돼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몰려사는 한국의 현실은 주거비 상승과 생활 여건 악화로 이어진다. 진화론적으로 나 혼자도 살기 버거운데 '종족 본능'이 생길 틈이 없는 것이다.
둘째, 높은 교육열과 학력 지상주의다. 이들 국가에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 청년들의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 자녀 한 명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문화는 다자녀 가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셋째, 유교와 가부장제의 영향이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여전히 강하고, 여성에게 과하게 부과되는 가사와 육아 부담은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넷째, 가장 결정적인 지표는 혼외출산율이다. 출산율이 1.6명을 넘는 나라 중 혼외출산율이 30% 미만인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은 고작 2.2%에 불과하다. 가부장의 영향으로 혼외 출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율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서초구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응답자들은 저출생 해결책으로 현금 지원보다 '일·생활 균형'(30.7%)과 '고용안정'(16.0%)을 꼽았다. 특히 출산 의향을 높일 조건으로는 '충분한 급여와 육아휴직'(84.5%)과 '배우자의 육아참여'(82.0%)가 가장 중요하게 꼽혔다. 주목할 점은 '배우자의 육아참여'가 출산 의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여성이 남성보다 10.7%p 높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서 특히 서울시가 올해 △돌봄·주거 △일생활균형·양육친화 △만남·출산 등 3대 분야 87개 세부사업을 통해 출생 친화적 환경 조성을 한다는 계획은 꽤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저출생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문화적 문제다. 도시 집중화를 완화하고, 교육 경쟁을 줄이며, 성평등한 가족문화 조성과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존중하는 근본적 변화가 이뤄져야 경제적 유인책도 효과를 낼 수 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가치관의 대전환이다. 이를 위한 '공론화'를 힘들어도 당장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