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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 없어도 살 사람 vs 법 없이 못 살 사람 vs 법이 소용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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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3. 12. 18:30

김진기 변호사(법무법인 민주·전 한국입법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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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변호사(법무법인 민주·전 한국입법정책학회 회장)
대한민국은 최고법인 헌법을 중심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법치주의(法治主義) 국가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하지만 법의 역할과 실제 효과, 무엇보다 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추상적 "법"에 대한 사람의 존재방식을 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의 헌법 분류 방식에서 벤치마킹하고자 한다.

뢰벤스타인은 1957년 그의 저서 '현대 헌법론(Political Power and the Governmental Process)'에서 헌법의 실질적 운영 방식을 기준으로 3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헌법이 실제로 국가 운영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규범적 헌법"이라고 했고, 다음으로 헌법이 존재하고 법적 효력이 있지만, 실제로 국가 운영을 지배하지 못하는 경우를 "명목적 헌법" 그리고 헌법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상 국가 운영과 무관한 명목상의 존재인 경우를 "장식적 헌법"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분류를 기반으로 이제 법에 대한 개인의 존재방식을 세 분류로 나누어 본다. 첫 번째는 "법 없어도 살 사람"이다. 이들은 법이 없어도 자신의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에 따라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은 법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올바르게 행동하며, 법치주의의 이상적 시민에 가까운 존재다.

두 번째는 "법 없이는 못 살 사람"이다. 이들은 법적 규제가 없다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로, 법의 틀 안에서만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에 법은 이들에게 필수적이다. 법은 이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법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거나 악용하며, 사회가 허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이들은 법이 있어도 사실상 그 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들은 또 법치국가의 취지를 자신들의 이익으로 원용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 자신에게 법의 준수를 요청하는 때에는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아 법은 단순히 주위 어딘가에 존재할 뿐인 법치국가(法置國家)(?)로 치부하기 일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법률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임종훈·이정은의 '한국입법과정론'에 의하면 한국의 법률 수는 △1980년 719개 △1990년 820개 △2000년 978개 △2010년 1,182개 △2020년 1,524개로 계속 늘어나 2025년 3월 현재는 1,676개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법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법을 무력화하는 권력의 남용과 허점 악용 사례가 빈번하며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사람"들의 존재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뢰벤슈타인은 나치 독일이 민주주의를 악용해 독재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고, 민주주의도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위 전투적 민주주의(Militant Democracy) 개념을 발전시켰다. 대한민국 법 발전사 역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파괴 세력을 응징했고, 형법은 말할 것도 강력한 특별형법 등 온갖 법으로 대응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직면하는 현실에서 그 시스템이 "법 없이는 못 살 사람"에게는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자주 무력해 보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법 없이는 못 살 사람"이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이제 "법 없이도 살 사람"조차 그 "법"에 호소하면서 더 많은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이 법답지 못하고, 그래서 법이 법으로 존재한다고 하기에 스스로 무안한 그 많은 뉴스 속에서 "법이 있어도 소용없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새로운 법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해결책일지, 법에 대한 우리 모두의 생각을 다시 정돈해 볼 때다.

대한민국이 정녕 법치국가(法治國家)가 아닌 법치국가(法置國家)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김진기 변호사(법무법인 민주·전 한국입법정책학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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