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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있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나라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 뜻을 실현해 낸 지도자는 모세였다. '사자가 이끄는 양 떼는 사자 떼이지만, 양이 이끄는 사자 떼는 양 떼'란 말은 허언이 아니다. 하늘이 돕고 신이 거들어도 '우리나라 만세'를 하려면 리더가 있어야 한다. 이 감독은 이승만을 건국(建國), 박정희를 흥국(興國)의 영도자로 자리매김한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다.
동양학자 조용헌 교수는 반탄(反彈)을 외친 전한길 강사는 녹두장군, 찬탄(贊彈)의 기수 정청래 의원은 저승사자의 관상을 가졌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 때 말솜씨가 좋은 국회 소추위원장 정 의원의 최후진술에 주목했었다. 저승사자답게 그동안 나온 주장을 뛰어넘는, 폐부를 찌르는 논리로 윤 대통령을 도륙하지 않을까 예측한 것이다.
"12·3 내란의 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도 계엄을 목격했다"로 입을 연 그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파면해야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이미 성숙 돼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들 교육해 오늘날 민주화 산업화를 이뤄낸 주인공도 국민이고, 올림픽 금메달 스포츠 강국을 이룬 것도 국민이다" "윤석열은 나라와 헌법을 사랑하는 국민을 총칼로 죽이려 했고, 피로 쓴 민주주의의 역사를 혀로 지우려 했다"고 했다.
"야당이 종북·반국가 단체라서 체포하려고 한 거면 집권 여당 한동훈 대표는 왜 체포하려고 했느냐?" "결국 반국가세력이라는 허울을 씌워 내 맘에 들지 않는 인사의 씨를 말려버리려 한 것은 아니냐? 영구 집권을 꿈꿨던 게 아니냐?"라고도 했다. 그리고 화염병을 갖고 미 대사관저에 침입하다 체포돼 안기부 조사를 받은 젊은 시절의 기억을 '독재정권이 가한 공포'로 규정한 후, 애국가 후렴을 읊으며 진술을 종결했다.
정 의원은 그가 속한 세력이 국민이고, 윤 대통령은 그런 국민을 탄압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하보우만을 한 것이다. 두레공동체의 김진홍 목사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그는 12·3 계엄을 내란으로 몬 세력에 주목해, '덕분에 국민들은 요소요소에 침투해 있는 반국가 세력의 실체를 알게 됐다'며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숱한 국민이 일어나 윤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고 광주에서도 역사적인 반탄 집회가 열렸다.
정 의원은 민주화 산업화를 이뤄낸 주인공은 국민이라고 했지만, 산업화 민주화를 하도록 길을 열어준 박정희와 전두환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정희의 산업화는 인정해도 전두환의 단임 실천이 민주화의 초석이 됐다고 말하는 좌파는 전무한데, 정 의원은 그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도자의 헌신 없이 국민이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
'선진국이 됐다' '1인당 GPD에서 일본을 앞섰다'는 식의 자신감 때문에 너무 많은 방심을 했다. 건국과 흥국 그리고 민주화까지 이룬 대한민국을 거꾸로 돌리려고 한 것은 이북의 공산세력이다. 이를 위해 이북은 주사파를 육성하고 반체제 시위를 조장했다. 공산주의를 주입하기 위해 민주화를 악용했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문화운동을 벌이며 중국의 동북공정처럼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전쟁을 일으켰다.
독재 때문에 지도자를 부정하다 보면 인민민주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인민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나 선동가를 따라가다 빈곤까지 품은 더 지독한 독재인 공산주의로 흐르기 쉽다. 탄핵과 특검을 난비시킨 입법독재가 인민민주주의의 시작일 수 있다. 김 목사가 12·3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했을 때 적잖은 국민들이 붉은빛에 젖어가는 현실을 알아채고 거리로 나온 것은 하보우만의 기적이었다.
저승사자는 백성을 가렴주구한 권력에 맞선 녹두장군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백성들 사이에 퍼진 "새야 새야 파랑새야~"란 노래는 막지 못했다. 깨달은 백성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깨달은 국민을 토착왜구와 극우로 몰아붙이던 정치세력이 이러한 국민을 부여잡기 위해 하보우만을 외치고 스스로를 중도 보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대한 하늘의 답이 삼일절에 나올 것이다.
기미년만큼이나 을사년도 절박한 시절이다. 하늘은 누구의 하보우만에 반응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