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곡 '킬링 미 소프틀리…' 연타석 히트…그래미 석권
인종 차별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 보여…음악 학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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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AP통신과 CNN,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플랙의 홍보 담당자인 일레인 쇼크는 성명을 통해 플랙이 미 뉴욕 맨해튼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근위축성 측상경화증(ALS·루게릭병) 투병으로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고 지난 2022년 밝힌 바 있는 고인의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전해졌다.
1937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음악가 집안의 딸로 태어난 플랙은 15세 때 흑인들의 명문대로 유명한 하워드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만큼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스무 살도 되기 전 대학을 졸업한 뒤 워싱턴DC에서 10년 가까이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밤에는 무명가수로 살아가던 중, 데뷔앨범 수록곡 '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우 유어 페이스'가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에 삽입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고 처음 연출에 도전한 이 작품에서 러브 테마로 쓰인 이 노래는 1972년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6주간 1위를 달리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 발표한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도 연달아 히트하면서 1973년과 197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 상을 2년 연속 받는 대기록을 세웠다.
고인은 노래 말고도 인종 차별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성 소수자 등 사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 말년에는 뉴욕에 설립한 '로버타 플랙 음악 학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NYT는 "플랙은 솔과 재즈, 포크의 친근한 조화를 통해 19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매력적인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