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방함록 등 기록 토대로 당시 상황 연구
"불교 본질 유지하려던 정신의 중요성 일깨워"
|
한국불교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눈길을 끈다.
24일 불교계에 따르면 동국대 선학과 박사수료 성견스님(의왕 청계사 총무국장)은 한국불교선리연구원에서 작년 12월 발행한 선문화연구 37집에 '6.25전쟁 시기의 불교 선승들의 동향에 관한 고찰'이란 주제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전쟁 당시 스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수행에 몰두했는지 선원(禪院)의 안거 수행 명부를 통해 고찰한 이 논문은 한국전쟁 시기 선승들의 동향을 분석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받는다. 성견스님은 앞서 지난해 5월 불국사·청계사·법주사 비문을 중심으로 성림 월산스님의 생애를 연구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금정사 금정선원 방함록' '범어사 금어선원 방함록' 등 기록과 관련자 증언을 토대로 성견스님은 "한국 선승들은 6.25전쟁 시기 불교의 본질을 지키며 수행에 전념하는 동시에 불교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고 혁신과 개혁을 모색했다"면서 "극한의 전쟁 상황에서 고(苦)에 대한 자각은 용맹정진으로 이어졌고 이는 불교 발전의 실천적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불교의 본질을 지키려 했던 한국 선승들의 노력이 현대 불교도들에게 큰 교훈을 주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불교 본질을 유지하고 수행을 지속하는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덧붙였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한국전쟁의 참혹함은 불교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란으로 사찰과 선원이 파괴됐고, 일부 스님들은 전쟁에 징집되기도 했다. 1947년 한국불교의 중흥을 발원하며 '봉암사결사'를 진행했던 성철·청담·자운·월산·향곡·종수·법전·성수·혜암스님 등도 빨치산이 식량을 노략질하는 등 더 이상 전란을 피하기 어려워지자 결사를 중단하고 흩어졌다.
이들은 전쟁을 피해 뿔뿔이 남하했다. 특히 선승들은 부산 범어사에 모여들었는데, 범어사 조실 동산 혜일스님이 조건 없이 수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48~1954년 금정사(범어사) 금어선원 방함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50년 하안거 안거객은 22명이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 동안거엔 안거객이 44명으로 두 배가 늘었다. 1951년 동안거엔 57명, 1952년 하안거엔 89명이 몰려 2년 만에 4배가 늘었다. 그러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1953년 하안거엔 46명, 휴전 직후 동안거엔 29명으로 안거객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범어사가 선승들의 피난처로 역할을 한 셈이다.
금정총림 범어사 초대 방장을 지낸 지유스님은 "한국전쟁기 동안 금정사는 '수좌들의 정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선승들이 거쳐 갔다"고 증언했다.
성견스님은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전란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명성 높은 선승들이 한곳에 운집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활발한 선문답이 이뤄졌고, 이런 교류는 한국불교가 선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교의 본질을 지키고 수행을 지속하려는 선승들의 의지와 실천은 현대 불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한국불교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빛나는 유산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