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사전 제작 준비와 현장 편집으로 순탄하게 촬영…제작비도 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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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5년만의 복귀작이 된 '미키 17'의 연출은 원작 소설 '미키 7'의 웅대한 세계관보다 주인공 '미키'의 속내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사업 실패로 떠안은 사채 빚을 갚기 위해 휴먼 프린팅(복제인간)을 자청한 뒤 우주 개척의 익스펜더블(소모품)로 사망과 부활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죽음의 고통에 시달릴 만큼 심약한 청년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졌고 이를 통해 거꾸로 희망을 얘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작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어 이번에도 SF를 선택했다. '괴물'까지 포함하면 필모그래피 8편 가운데 절반이 SF인 셈이다. "어쩌다 보니 제가 굉장히 선호하는 장르가 돼 버렸죠. 그러나 처음부터 SF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건 아니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면 SF, 그 중에서도 저 만의 '사람 냄새 나는' SF로 가게 되더라고요. 아 참, '미키 17'을 처음에는 '발 냄새 나는' SF'라고 소개하니까 주위에서 살짝 만류하더군요. 그래서 '사람 냄새'로 바꿨습니다.
캐스팅을 비롯한 제작 전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실실 웃으며 미팅 장소에 나타난 로버트 패틴슨은 영락없는 '미키' 그 자체였다. 처음 만나자마자 캐스팅을 결심한 이유였다. 그와 함께 할리우드의 남녀 연기파 마크 러팔로와 나오미 애키가 독재자 '케네스 마샬' 역과 '미키'의 연인 '나샤' 역으로 합류하면서 황금 라인업이 꾸려졌다. 여기에 꼼꼼한 스토리보드 제작과 속도감 넘치는 현장 편집 등 한국 영화인들의 현장 노하우가 더해졌다.
봉 감독은 "스토리보드와 현장 편집의 도움을 받지 않고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가 할리우드에 의외로 많다. 그래서인지 내가 스토리보드와 현장 편집을 활용해 일정대로 정교하게 차근차근 찍어내면 현지 스태프가 신기해하면서 좋아한다"며 "홍보·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순 제작비가 1억1800만 달러(약 1700억원)로, 이 정도면 할리우드 기준에서는 중대형 규모에 해당되는데 촬영 종료후 확인해보니 당초 예산보다 200만 달러나 아꼈더라"고 귀띔했다.
할리우드 배우 파업으로 인한 몇 챠례의 개봉 일정 변경 말고는 이처럼 별다른 이슈 없이 완성한 여덟 번째 작품이지만,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심경은 여전히 떨리고 무섭다. '기생충'의 후속작이란 부담감과 엇갈린 사전 반응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울 법도 하지만, 자신의 주 업무는 늘 차기작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애써 차분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 등과 같은 주제 의식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다는 일부의 평가에는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들 때 내 핵심 목표는 극장 안 관객들이 2시간 동안 핸드폰을 보지 않도록 긴장감과 흥분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메시지 전달은 그 다음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잠자리에서 생각이 확장된다면 그 역시도 환영하는 결과"라고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