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시간 길지만, 거의 모든 장면의 미장센 수준급…집중 필요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 만큼이나 가이 피어스 주목해야
|
숏폼 동영상도 길다고 투덜대는 요즘,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 35분에 이르는 영화가 등장했다. 15분 간 인터미션도 있다. 12일 개봉하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다.
제목인 '브루탈리스트'는 건축 사조 '브루탈리즘'(brutalism)에 충실한 건축가를 지칭하는 단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20여년간 유행했던 '브루탈리즘'은 콘크리트의 전면적인 노출과 기하학적인 건물 구조가 주된 특징으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처음 사용했다. 우리에겐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등으로 익숙하다.
이 작품은 낯선 미지의 세계에서 편견과 무시를 딛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한 건축가의 굴곡 많은 삶을 잔잔하게 뒤쫓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파헤친다. 워낙에 입체적인 시각으로 다루는 탓에 실존 위인의 일생을 그린 전기 영화처럼 보이나, 주인공 '라즐로 토스'는 완전한 가상의 인물이다.
앞서 밝힌대로 러닝타임만 긴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수준급의 연기와 완성도 높은 촬영·조명·미술 등으로 꾹꾹 채워져 있어 오랜 집중이 필요하다. 극의 유장한 흐름에 잠시라도 한 눈을 팔다가는, 보석처럼 잘 세공된 순간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넘쳐나는 장점들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출연진의 연기다. 다음달 2일 열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03년 '피아니스트' 이후 22년 만에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노리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연이 우선 압도적이지만, '해리슨' 역의 가이 피어스도 주목하길 권한다. 'LA컨피덴셜'과 '메멘토' 등으로 낯익은 그의 다면적인 연기는 이 영화의 숨은 백미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남우주연상과 더불어 작품·감독·각본 등 올해 아카데미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에밀리아 페레즈'(12개)·'위키드'(10개)와 최다 부문 수상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