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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민족의 저력과 긍지로 難局을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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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0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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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이른바 '12.3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온 나라가 수렁에 빠져 두 달이 넘게 허우적거리고 있다. 졸지에 선장을 잃은 대한민국은 리더십 공백으로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안보 사회 등 전 분야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가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격랑에 휩싸인 모양새다. 대한민국 호(號)가 미증유의 파고를 슬기롭게 헤치고 회복탄력성을 발휘, 종전의 위용을 되찾아 가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호는 여기서 침몰할 것인가? 절대 그래선 안 된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서 숱한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있었지만 용케도 이를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우리만의 고유한 민족성과 문화가 뒷받침되었기에 이러한 성취가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문화민족'의 저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대장경으로 꼽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세계 최초 로켓형 병기 신기전(神機箭),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학문적 통찰력이 반영된 혁신적·과학적 문자체계인 한글에 이르기까지.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건축과 불상에서부터, 그림과 도자기 한 점, 기와 한 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다.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들여왔으나, 그대로 모방하거나 추종하지 않고, 이를 응용, 발전시키는 독창적인 경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상감청자에 대해, 송(宋)나라 서긍(徐兢)의 기록에 '금그릇과 값이 같다'고 표현한 것에서 보듯, 색깔과 형태미 등에서 세계 으뜸이라는 데 이론이 없을 정도다. 사실, 15세기 이전 이렇게 단단하고 유려한 도자기를 만들어 원조(元祖)인 중국을 능가했으니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석굴암(石窟庵) 돌부처의 감은 듯 감지 않은 듯한 가녀린 눈매, 신라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인면(人面)수막새'의 넉넉하고 푸근한 미소야말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백미(白眉)라는 평가다. 중국에 크고 많은 석불(石佛)이 있지만, 재질(材質)과 형태미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을 상대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한다. 사암(砂巖)이나 석회암(石灰巖) 편암(片巖) 등 무른 돌을 쓰는 중국과 달리, 우리는 화강암(花崗巖)이라 단단해 칼 대신 일일이 정으로 쪼아야 하는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는 것. 탑(塔)의 경우에도 우리는 석가탑(釋迦塔) 다보탑(多寶塔)처럼 돌탑이 주종(主宗)으로, 중국 전탑(塼塔, 벽돌 탑), 일본의 목탑(木塔)과 차별화된다. 석물(石物)을 나무처럼 능란하게 다루는 기술은 압권이다.

어디 돌 뿐이랴! 실존(實存)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형상의 국보(國寶) 금동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경우, 팔이 실제보다 길게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기형적인 모습임에도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외려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하는 '이상적 리얼리티'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건축은 또 어떤가. 양쪽이 반듯한 대칭(對稱)보다는 비대칭(非對稱)을 선호, 변화와 여유를 주고자 하는 것이 특기할만한 점이라는 설명이다. 창덕궁(昌德宮) 낙선재와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 경주 양동마을 상춘고택 근암고택 등은 이 비대칭 배치를 통해 집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외부공간이 더 좋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의 경우, 자연지형(自然地形)을 이용, 측면이 보이도록 변화를 주었다.

이밖에 회화(繪畵)도 '한국의 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자화상(自畵像)은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이런 초상화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단연 독보적이란 평이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부릅뜬 눈, 털끝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치밀함 등은 추상(秋霜)같은 선비의 표상(表象)이다.

불과 사흘만에 이상향(理想鄕)을 그렸다는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고려 불화(佛畵)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물방울관음)의 컬러풀한 색감과 단아한 형태,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風俗畵) 등 회화 작품들도 우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미(美)'를 지켜내기 위해 평생 노력한 불세출의 애국자(愛國者)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과 같은 분이 계셨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제 한 몸 건사하고 생계유지에 급급한 상황에서 앞날을 내다보고 민족의 얼을 보존하는 데 앞장선 혜안(慧眼)과 열정(熱情)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오늘 우리 정치 사회의 아수라(阿修羅) 같은 난맥상을 볼 때, 지도층부터 대오각성, 새롭게 법과 도덕 그리고 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정직하고 법을 잘 지키며 예의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 굳건한 공동체의식으로 살맛나는 세상,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부터 법적 절차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그렇게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 그것이 '문화민족'의 DNA를 물려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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