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예결위는 이날 감액만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연합뉴스 |
삭감된 예산은 기가 찬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특수활동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정업무경비 506억9100만원, 검찰 특활비 80억900만원, 감사원 특경비 45억원과 특활비 15억원, 경찰 특활비 31억6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비한 4조8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비비는 2조4000억원을 삭감했다.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도 5000억원 감액했다. 수사기관은 업무 특성상 지출 내역을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앞으로 예산 부족으로 수사에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민주당은 미래 먹거리 예산도 대폭 삭감했는데 포항 앞바다 석유시추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은 505억원 중 497억원을 삭감해서 겨우 8억만 남겼다. 이렇게 되면 시추가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민관합작 선진 원자로 수출기반구축(R&D) 예산은 70억원에서 63억원이 감액돼 7억만 남았다. 소규모 삭감이 아니라 90~98% 삭감하는 것은 석유 시추 사업이나 원자로 수출 기반 예산을 없앤 것과 다름없어 이 사업들을 잘라내 관련 산업을 고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이 국회에서 일정부분 증액·감액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게 건전한 예산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특수활동비를 싹둑 잘라낸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대표와 민주당을 수사하거나 조사한 기관이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야당이 예산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흔히 있는데 이때도 여야 간 물밑 대화는 있었다. 이번처럼 여당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이 마음대로 예산을 삭감하지는 않는다. 예산 삭감으로 업무 공백이 생기면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앞서 2조원 규모의 이재명표 지역화폐, 1조6000억원의 건강보험 가입지원, 277억원 규모 호남고속철도 예산을 증액했다가 없던 일로 돌렸다. 권력기관 특수활동비와 바꾼 것인데 예산을 멋대로 증액·삭감한 것은 정부 예산편성권 침해다. 기획재정부는 민주당이 짠 예산은 국가 기본 기능을 마비시키고, 민생은 저버린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인데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를 상정해선 안 된다. 예산은 정부 예산이지 민주당 예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