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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손준호는 어떠한 부당 행위도 없었다고 부인하면서 자기 진술은 겁박에 의한 것이고, 그와 그의 가족이 중국 경찰의 위협을 받았다고 했는데 중국은 어떤 입장인가"라는 질문에 "손준호가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손준호가 '비(非)국가공작인원 수뢰죄'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판사가 공개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손준호는 죄를 인정해 처벌을 받아들였고, 법정에서 참회하면서 상소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전날(11일) 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백을 호소한 손준호의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이다.
중국 외교부까지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손준호의 기자회견이 중국의 국가 시스템을 저격한 모양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손준호의 발언 중에는 '중국의 사법 시스템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대목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중국 공안 협박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한 부분 등이다. 그래서 마오닝 대변인이 "중국은 법치 국가로, 사법기관은 엄격히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당사자의 합법적 권익을 충분히 보장한다"라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축구협회는 지난 10일 손준호(전 수원 FC)를 포함, 43명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리고 이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통지했다. "사법기관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전 산둥 타이산 선수 손준호는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도모하려고 정당하지 않은 거래에 참여, 축구 경기를 조작하고 불법 이익을 얻었다"고 했다. 국제축구연맹이 중국축구협회의 통지내용을 사실로 인정하고 각국 축구 협회에 알리면, 명단에 있는 43명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수 없다. 나아가 앞으로도 축구계 관련 일을 절대 할 수 없다. 손준호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배경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손준호지만, 승부조작범으로 지목된 동료 진징다오로부터 받은 20만 위안(약 3700만원)의 현금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내놓지 못했다.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프로축구 수원FC는 13일 손준호와 계약을 해지했다. 최순호 수원FC 단장은 "논란이 계속되면 팬들이 축구 경기보다는 손준호의 상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며 "손준호와 이야기를 나눈 뒤 상호 합의로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부터 수원FC에서 뛴 손준호의 계약 기간은 연말까지 6개월이다. 연봉은 5억 원(출전 시간 등 옵션 포함)으로 알려졌다.
손준호 측은 귀국 직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벌어진 일, 혐의점, 추가 제재 가능성에 대해 함구했다. 손준호는 중국 산둥 타이산에서 뛰던 작년 승부조작 혐의로 체포, 약 10개월 동안 구금됐다. 지난 3월 풀려난 그는 수원FC에 입단 해 12경기를 뛰며 1골 1도움을 올렸다.
지난 6월, 손준호 영입에 제일 먼저 나선 구단은 친정팀 전북 현대였다. 그러나 합의점을 향해 달려가던 전북과 손준호의 협상은 막판에 틀어졌다. 전북은 손준호의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약에 안전장치를 삽입하려 했다. 중국서의 일과 관련한 금전적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경우 손준호 측이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전북은 손준호가 산둥으로 이적하기 직전까지 몸담았던 구단이다. 문제가 생기면, 당시 받았던 이적료에 더해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규정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손준호와의 계약 즉시 이적료 반환을 둘러싼 국제소송의 가능성도 농후했다.
전북은 선수로서의 손준호를 존중했지만, 이러한 위험부담까지 감수할 수는 없었다. 손준호가 '수용 불가'라며 전북과의 협상을 종료하고 수원FC로 향한 배경이다. 수원FC는 전북과 달리 문제가 없다'라고 판단해 손준호와 사인했다. 당시 많은 축구팬들은 '전북이 손준호를 홀대했다'며 전북의 프런트를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손준호에께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의 SNS를 찾아가 '인터넷 테러'를 하기도 했다. 반면, 수원FC를 향해서는 '중국에서 부당한 고난을 겪고 돌아온 영웅을 따뜻하게 품어줬다'며 찬사를 보냈다.
스포츠의 위대함 가운데 하나는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러나 꼭 보았으면 하는 상황을 실제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낭만 폭발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현실의 법률을 위반할 수 없다. 스포츠도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프로구단은 기업이다. '경기'는 물론 '낭만'도 생산하는 기업이다. '경기'와 '낭만'의 생산으로 얻는 이익보다 예상 손해액이 매우 크다면 구단은 그 프로젝트의 진행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다. 손준호의 사례가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