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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시사상식] 공화당 유력인사들이 트럼프 외면한 이유 ‘프로젝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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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식 기자

승인 : 2024. 08. 28. 18:38

프로젝트 2025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지난해 9월 작성해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진 920쪽 분량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 표지. /'프로젝트 2025' 보고서 캡처
현직 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맞붙는 2024 미국 대통령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대형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고(故)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밋 롬니 상원의원 등과 함께 일했던 공화당 출신 유력인사 238명이 지난 26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USA투데이가 이날 단독 입수한 공개서한에는 11월 대선에서 해리스 부통령과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이날 해리스 지지를 선언한 공화당원 명단에는 부시 전 대통령의 오랜 참모였던 진 베커, 매케인 전 의원의 수석보좌관이었던 마크 살터와 크리스 코흐, 롬니 의원의 2012년 선거재정위원장이었던 데이비드 니런버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솔직히 이념적으로는 해리스 부통령이나 월즈 주지사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다른 쪽(트럼프 전 대통령과 J.D. 밴스 상원의원)을 도저히 지지할 수는 없었다"고 해리스 지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갑작스런 후보직 사퇴 발표와 곧이어 등장한 해리스 부통령의 돌풍에 밀려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 20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느닷없이 등장해 자신을 직격한 스테퍼니 그리셤 전 백악관 대변인과 공화당 소속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인 존 자일스 애리조나주 메사 시장의 존재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핵심 언론 참모로 일했던 그리셤 전 대변인은 그의 옛 상관을 향해 "공감 능력은 물론 도덕과 진실성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고 독설을 날린 후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해리스는 국민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밝혀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AP통신 등 미국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리셤 전 대변인은 2021년 1월에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트럼프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 사태 이후 '반트럼프' 진영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지 부시 존 매케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고(故) 존 매케인 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AP·EPA, 연합
하지만 그리셤 전 대변인을 비롯한 공화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적군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이례적 현상의 배경엔 트럼프 재집권 로드맵으로 알려진 '프로젝트 2025'에 대한 우려가 깊게 깔려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보수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지난해 9월 작성해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진 920쪽 분량의 프로젝트 2025에는 불법이민자 추방,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낙태 금지 법제화 등 평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해온 과격한 정책 방향이 상당수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에 대한 약속'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프로젝트 2025의 서문은 "오늘날 미국과 보수주의 운동이 1970년대 후반과 유사한 분열·위험의 시대에 직면했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미국 생활의 중심인 '가족' 회복 △행정국가를 해체해 국민에게 자치권 반환 △전 세계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주권·국경·영토 수호 △헌법이 '자유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개인의 자유 보장 등의 4개 권고안을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또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중국을 '미국인의 안보, 자유, 번영에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핵무기 생산을 제안하며, 미국의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축소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방부 정책 제안 항목에서는 "동맹국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이란·북한의 위협의 대처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동맹국들의 재래식 방위 분담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줄곧 한국 등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면서 미군 인건비·전략 자산 전개 등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한 분담금의 대규모 증액을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연방정부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관된 방식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며 이른바 '스케줄F'라 불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행정명령을 부활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된 연방 공무원을 모두 정무직으로 전환시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교육부에 침투한 급진주의자, 광신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찾아내 축출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모든 행정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자신이 과거 TV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마구 외쳤던 "당신 해고야(You're Fired)"란 말을 재집권 후 재현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최근 들어 중도층 표심 이탈을 우려한 듯 "프로젝트 2025는 자신의 정책 방향과 무관한 것"이라며 거리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표를 의식한 듯 낙태 금지 문제와 관련해서는"대법원이 지난해 결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취지대로 각 주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전국적인 낙태금지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TV에 출연해 외친 이 한 마디는 지금 그리셤 전 대변인을 비롯한 수 많은 여성들이 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분노를 표하며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미국 여성들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낙태권 폐기를 공개적으로 자랑해온 트럼프에게 우리 딸과 손녀들의 미래를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주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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