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경욱 칼럼] 기후변화와 출산의 상관관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73001001657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7. 29. 17:42

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출산은 언제로 생각하고 있니?"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어요."
"아니 왜?"
"기후변화가 심해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아요."

지인이 결혼한 지 1년 남짓 된 딸과 최근 나눈 대화다. 그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교육비, 양육비 부담 등으로 출산을 꺼린다는 얘기는 듣고 있지만, 막상 딸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도대체 기후변화랑 출산이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딸의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했다 싶다. 육아를 도우려 딸 집 근처로 이사까지 했는데….

딸은 앞으로 기후변화로 공해 등 '환경 불안'이 극심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낳게 될 자녀는 불행한 시기를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단다. 환경 불안이란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두려움, 걱정, 죄책감, 분노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 반응을 통칭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딸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불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딸과 대화 이후 뉴스 등을 검색하고서야 딸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동시에 세월이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요즘 젊은 층의 기후변화 걱정은 연구논문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낳는 것을 재고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다수는 출산을 포기하거나 가족계획을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은 주로 가임 여성이 기후 변화가 심각해질 미래에 자녀들이 겪게 될 고단한 삶에 대한 우려에 기초한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었다. 기후 변화로 망가진 지구에서 살아가게 놔둘 바에는 차라리 낳지 않는 것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국가에 항의하려고 출산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사람도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변화가 시행될 때까지 이른바 '출산파업', '인구파업'을 선택하겠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문을 접하고 그렇지 않아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불길한 예측을 소환해 봤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 명예교수가 2006년 유엔 인구 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언급하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째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옥스퍼드대 인구학 교수와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 학장을 지내며 40년 이상 인구 문제를 연구한 세계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다. 당시에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18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2013년부터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합계 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2020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데드크로스'를 지난 우리나라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감소 속도도 예상보다 빠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12만3000명 감소했다. 2021년에는 5만7000여 명 줄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경우 대학 졸업 때까지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여유 계층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에게는 막대한 부담이 된다. 부동산값 급등으로 자녀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게 점점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원료로 만들었는지 불분명한 패스트푸드가 판을 치고 있다. 먹거리는 숨 가쁘게 바쁜 일상 탓에 패스트푸드로 대체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날씨 등 환경도 급변한다. 폭염과 한파가 극성을 부리기 마련이다. 해외에서 폭우나 한파로 농작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끊임없이 죽어 나가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이제 나에게 닥친 일처럼 걱정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국지성 호우, 극한 겨울 등 변화무쌍한 날씨가 점차 일상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 특히 우리 정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출산 시 파격적인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신혼부부와 다자녀 가정을 위해 다양한 주택 공급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정부 예산 가운데 막대한 부분이 출산 장려에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출산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기후변화 우려에 대한 출산 기피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에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후 변화를 탓하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이기심의 발로 아니겠는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정부와 사회의 필사적인 노력이 기후변화에 묻힌다면 이는 정말 기막힌 노릇이다. 출산율 제고 대책 못지않게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환경 정책과 기업 등 사회의 배려에도 상당한 비중을 둬야 할 때다. 정부에 기후변화부라든지, 기후변화청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