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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유기동 선생 등 세 청년은 1924년 4월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의 주역들이다. .
김만수·최병호 선생은 하얼빈 총영사관의 고등경찰 간부 쿠니요시와 형사부장 마쓰시마가 하얼빈 일대의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함부로 해친다는 소문이 돌자, 하얼빈 지역에서 친일파와 일본 경찰을 암살하며 일제 기관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은신하던 중 예전의 동지 유기동 선생과 우연히 만나 함께 의열 활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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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며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보훈부는 세 청년의 의거는 만주 무장독립운동 진영에 큰 교훈을 줬고, 1924년 6월 이후 독립군단들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