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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법률 저런 판결·41] 도난 문화재 환수의 법률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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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 기자

승인 : 2019. 02.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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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 반출돼 소재조차 알 수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민간부문이나 정부당국의 노력으로 다행히 반출된 문화재를 찾아내 이를 매수하거나 소송 등을 통해 되찾아오는 소식을 간간히 언론보도를 통해 접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소송을 통해 반출문화재를 되찾게 된 특이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인조계비 장렬왕후 어보(御寶)’ 반환 사건이 그것이다.

조선시대 어보란 왕실에서 제작해 사용하던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으로써, 책봉, 추존 등 조선왕실의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 제작돼 사용된 것이다. ‘인조계비 장렬왕후 어보’는 1676년경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 조씨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제작됐다. 그 후 장렬왕후 어보는 종묘(宗廟)에 봉안돼 관리됐는데, 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 따라 이 사건 어보를 포함한 조선왕실 재산의 소유권은 대한제국으로 승계됐고, 일제 강점기 이왕직에 의해 종묘에 보관·관리되다가 1950년 4월 8일 제정·시행된 구왕궁재산처분법에 의해 대한민국의 소유로 됐다. 이후 6·25 전쟁 당시 도난당해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됐다.

고미술품을 수집 거래하는 A는 2016년 1월경 미국의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일본 석재 거북’이라는 제목으로 경매에 붙인 물건을 미화 9500달러에 낙찰 받았다. 이후 이를 국내로 반입한 다음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인조계비 장렬왕후 어보’인 사실을 확인했고, 2016년 9월경 국립고궁박물관에 이 사건 어보를 2억5000만원에 매수할 것을 신청하면서 이 사건 어보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인도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이 사건 어보를 심의한 결과 인조계비 장렬왕후 어보로서 도난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매입 및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A는 장렬왕후 어보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는 A가 미국 경매사이트에서 낙찰 받은 장렬왕후 어보가 도난품인지 여부와 도품이라도 우리 민법 249조에 의해 A가 이 사건 어보를 선의취득했고, 대한민국은 민법 251조에 따라 대가를 변상하고 이 사건 어보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관련 증거를 종합해 우선 위 어보가 종묘에서 도난당한 도품인 점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우리 민법의 선의취득 규정이 적용될 수 있는 지였다. 법원은 이 쟁점과 관련해 이 사건 장렬왕후 어보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민법이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주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거래 당사자의 국적·주소·물건 소재지, 행위지, 사실발생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곧바로 내국법을 적용하기보다는 국제사법을 적용해 그 준거법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을 적용해 준거법을 정해야 한다.

한편 국제사법 관련규정에는 ‘동산 및 부동산에 관한 물권 또는 등기하여야 하는 권리는 그 목적물의 소재지법에 의하고, 그 권리의 득실변경은 그 원인된 행위 또는 사실의 완성 당시 그 목적물의 소재지법에 의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A가 경매사이트에서 이 사건 어보를 낙찰 받을 당시 그 어보가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었던 사실, 그 후 A가 이를 국내로 반입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A가 이 사건 어보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했는지 여부에 관한 준거법은 그 원인된 행위 또는 사실의 완성 당시 그 목적물의 소재지법인 미국 버지니아주법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영미법에서는 도품에 관해 ‘누구도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양도할 수 없다(nemo dat quod non habet)’는 원칙이 지배하고 있어 도품에 대한 선의취득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버지니아주법도 도품에 대한 선의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A가 비록 경매사이트에서 이 사건 어보를 낙찰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도품이므로, A는 버지니아주법에 따라 장렬왕후 어보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최승수 법무법인(유) 지평 변호사>

*[이런 법률 저런 판결]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본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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