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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 장정구는 1962년 부산태생으로 1975년 7월 복싱에 입문했다. 스승은 ‘한국의 안젤로 던디’라 불리운 명장 이영래 사범이었다. 1977년부터 김재홍 홍동식 김상찬 김평국 최주영 등 수준급 복서들과 승패를 주고 받으며 한 단계씩 도약하던 장정구는 1979년 모스크바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국가대표 장흥민(한국체대)에게 고배를 마신다. 이후 1980년 전국체전 부산대표 선발전에서 일반부 대표로 선발되지만 부산체육회에서는 장흥민에게 출전권을 넘긴다. 이를 전환점으로 아마복싱을 접고 그 해 11월 프로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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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는 이영래 사범과 결별 후 황충재, 김태식을 지도했던 임현호 사범과 손잡고 4차 방어전을 준비했다. 결론적으로 이 선택은 신의 한수였다. 15차 방어를 달성한 원초적 동력이었다고 장정구 챔프는 회고했다.
야인 생활을 하던 이영래 사범은 신생 88체육관으로 적을 옮겼다. 당시 88체육관은 극동체육관 후원회장을 역임했던 심영자 회장과 그곳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낸 김철호 챔프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신생 체육관이었다. 이 때 심 회장이 이영래 사범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황동용(1962년생)이란 비빌병기를 이영래 사범에게 맡긴다. 황동용은 필자의 고향 1년 선배였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복서로서 그의 능력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황동용은 당시 3전 전승을 달리며 88체육관에서 차세대 챔피언으로 각광받는 유망주였다.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연타 능력으로 국가대표인 권채오(한국화약)와 박제석(웅비), 서정수(홍익대)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1982년 볼리바르컵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체력이 좋은 파이터였다.
88체육관은 김용강을 비롯해서 박용운, 박광구, 진윤언, 최연갑, 김의진 등 좋은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지만 황동용은 단연 돋보이는 유망주였다. 특히 이영래 사범과 황동용의 콤비는 수어지교 (水魚之交)와 같은 만남이라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조화였다. 국내 랭커였던 유명우와 스파링에서도 일진일퇴의 호각세를 보일 정도로 좋은 파이터였다. 유명우를 스카웃하려던 심영자 회장은 황동용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유명우의 스카웃을 철회하기도 했다. 결국 유명우는 동아체육관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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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6월 이영래 사범의 시나리오 대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W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온 장정구가 임현호 트레이너와 함께 영등포에 있는 88체육관에 스파링을 하러 모습을 드러냈다. 4차 방어전을 앞둔 장정구는 체중감량에 시달린 듯 초췌한 인상이었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장정구는 평소대로 2명의 파트너와 3분 3회씩 스파링을 치렀는데 황동용은 2번째 파트너로 나섰다.
장정구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노련하게 황동용의 예봉을 꺾은 뒤 주도권을 잡고 압박해 나갔다. 황동용도 만만치 않게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다 클린치상태가 되자 황동용은 장 챔프의 뒷머리를 가격했다. 바로 이 장면이 장챔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천하의 장정구에게 새파란 신인이 감히?
탈 없이 스파링은 끝났지만 장정구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모양이다. 20일 후 장정구는 다시 임현호 트레이너와 함께 다시 88체육관에 나타났다.
이번엔 말이 필요없이 황동용과 6회전 스파링을 벌였다. 단단히 벼르고 나왔던 것이다. 필자도 그 스파링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봤다. 공이 울리자 장정구는 지난번과 다르게 초반부터 강력한 좌우연타를 뿜어내며 파상공격을 펼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난타당한 황동용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자 스파링은 잠시 중단됐다. ‘과연 장정구는 다르구나. 세계적인 복서는 한차원이 틀리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야구로 말하면 한국시리즈를 보다가 월드시리즈를 보는 듯한 감흥을 느꼈다. 황동용은 그날 스파링에서 현격한 기량차이를 절감하며 6회전 스파링을 마쳤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판이었다. 장정구는 지난번 스파링과는 확연히 다른 공격패턴을 선보이며 초토화(焦土化) 작전으로 임했다. 장정구는 20일 동안 황동용을 연구분석해 철저히 대비했던 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스파링이 끝난 후 이영래 사범은 심영자 회장에게 질타를 들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스파링은 서로에게 유익한 일전이 됐다. 장정구는 그해 8월 도카시키라는 난적을 맞아 멀티복싱의 진수를 보여주며 8회 KO승을 거두며 롱런의 기틀을 마련했고 황동용은 그해 9월 자신의 통산 4번째 경기에서 46전 40승(35KO) 5패 1무를 기록한 멕시코의 강타자 헤르만 토레스를 일방적인 판정으로 잡고 세계랭킹에 진입했다. 장정구에게 난타당했던 황동용도 세계적 수준의 복서임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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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매진했던 분야에서 최고봉에 섰던 복서였고, 무수히 많은 별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이었던 장정구. 이제는 제2의 장정구 탄생도 기대해본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서울시복싱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