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궁' 강정미 대표
아시아투데이 김초희PD = 베트남 수도 하노이 시. 현재 한인 식당은 160여개. 최근 베트남 붐을 타고 매달 2~3개의 식당이 오픈 중이다. 식당이 많아지면서 교민들에게는 선택장애가 생겼다. 그런 가운데 망설임 없이 갈 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고궁'이다. 고궁은 지난 20년 교민의 향수가 담긴 집이다.
고궁은 한식 전문이다. 한식의 탕, 찌개, 무침, 볶음, 면 등이 고루 있는 집이다. 특별히 주력 메뉴가 없다. 고객들은 주로 요일별 추천 메뉴를 먹는다. 먹어보면 원만하다. 솜씨 좋은 엄마가 차린 집밥 같다. 주문 음식 전에 나오는 반찬세트는 정갈하고 신선하다. 비우면 자꾸 채워준다.
고궁의 강정미 대표는 1997년에 하노이에 왔다. 여행을 왔다가 한식당에 눈이 갔다. 이듬해 1998년 1월부터 식당을 운영했다. 처음은 동업이었다. 그 무렵 하노이는 주로 주재원 가족으로 1,000명 미만, 하노이에 한국 아가씨는 1명, 홍일점 강대표는 모든 주재원의 여동생이었다. 동업하는 7년 동안 강대표는 외식업의 기초와 안목과 사업의 기본인 인내와 끈기를 배웠다.
이를 통해 2005년도에 지금의 고궁으로 독립했다. 고궁은 처음부터 교민들이 차고 넘쳤다. 초기 7년의 내공이 꽃을 피웠다. 한국대사관과 주재원이 많았던 대우호텔 인근에 입지한 것도 적중했다. 당시 10여개 한국 식당 중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한번 가면 다시 가게 되는 식당이 고궁이었다. 상차림은 언제나 넉넉하고 주인의 마음 씀씀이는 늘 푸근했다.
2011년도 경남랜드마크 빌딩(이하 경남)이 오픈했다. 한인들의 사무실과 거주지가 경남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점차 고궁은 외곽이 되었다. 매출은 줄고 식당은 늘고 있었다. 외식 전선은 새로운 지평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고급화, 대형화로 무장한 새 식당들이 하노이 식당가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경남은 2개의 특급호텔(인터콘티넨탈과 칼리다스), 10,000여명이 일하는 오피스, 1,000세대의 주민이 거주하는 복합 사무, 상업, 생활, 문화 공간이다. 상가 임대비는 하노이에서 제일 비싼데, 비싼 만큼 일류를 지향하는 유명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고심하던 강대표는 2014년 경남으로 이전하게 된다. 지나고 보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 또 한 번 식당의 이전과 입지 선정이 적중했다. 교민들은 고궁이 다시 문 열기를 기다렸다. 강대표는 한결 같은 자세로 고궁의 입구에서 고객을 영접했다. 강대표는 365일 식당 입구에 있다. 교민들은 그녀가 언제 쉬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고궁의 성공요인으로 강대표의 하노이 조기진출, 입지 선정, 적절한 아이템, 한결 같은 자세를 꼽는다. 특히 고객 맞춤 서비스는 일품이라는 평. 매운 것이 싫은 어린이와 까칠한 주부들과 시켜주기를 원하는 중년 아저씨까지 그들의 기호와 취향을 맞춰주는 곳이다. 고궁에 가면 무난하고 무던하고 무리 없다는 것이 고객들의 중평이다. 강대표가 늘 현장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고궁의 강점은 개별 아이템이 모두 주전급이다. 맛과 더불어 베트남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서빙도 볼 만하다. 고궁의 개별 메뉴 하나 하나에는 사연과 스토리가 내장되어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의 종업원들과 지지고 볶고 때로는 한숨으로, 때로는 눈물로 지새운 내력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행주, 걸래, 수건을 구분하지 않고, 냉장고와 냉동고를 구별하지 못하는 신입 직원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일은 아주 난해하다. 오픈 시간을 앞두고 배가 좀 아프다고 바로 집에 가버리는 직원도 많다. 돌아서면 품질이 떨어지고, 돌아서면 직원이 사라지는 이국의 현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가끔 고궁에 가면 60대, 70대 노신사들이 강대표를 얼싸안는 풍경이 연출된다. 40대, 50대에 하노이에서 주재원을 했던 분들이다. 강대표를 통해 지난 날 자신들의 시간과 상념을 추억하는 것이다. 고궁은 그런 곳이다. 옛 시간의 흔적이 있는 곳, 보이지 않은 세월의 문신이 있는 곳, 고향의 그리움과 현실의 결핍이 맛 속에 비벼져 있는 곳이 고궁이다.
※ 윤하는 2004년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살면서 교민잡지<좋은 베트남>을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