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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5차 핵실험, 5월 노동당 대회 전 가능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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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기자

승인 : 2016. 04. 17. 12:18

[한반도, 외교안보 길을 묻다-릴레이 인터뷰]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김정일, 북한 내부 장악력·통치력 공고화", "군부 군사쿠테타 가능성 희박", "경제 개혁개방 적극 추진 전망"
정성장 인터뷰 사진 1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7일 “지금까지의 경향을 유지한다면 2019년께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하지만 언제라도 핵실험을 할 준비가 돼 있어 내년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나 오는 5월 7차 노동당 대회 전에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2006년, 2009년, 2013년, 2016년에 핵실험을 했다. 지금까지의 경향을 유지한다면 2019년께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제라도 핵실험을 할 준비가 돼 있어 내년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나 오는 5월 7차 노동당 대회 전에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이후 북한이 핵과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무기 개발과 고도화로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초강력 유엔 대북제재와 국제사회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에도 김정은 정권은 군사적 위협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집권 5년 차를 맞고 있는 김 제1비서의 북한 장악력과 통치력, 북한 내부 권력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을 17일 만나 알아봤다. 정 실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북한 군부와 내부 권력 조직 연구자로서는 최고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은?
“최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차량과 인력의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 북한이 오는 5월 7차 노동당 대회 개최 전에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현재 언제라도 핵실험을 실시할 준비가 돼 있으므로 미국에서 내년에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에도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는 통일부와 같이 ‘힘없는’ 부서에 북핵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할 것이 아니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에 북핵 TF를 설치해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한국의 ‘핵무장’을 포함해 강력한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핵무장을 결정하면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보다 수백 배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북·미 간의 대립구도를 한국 우위의 남북경쟁 구도로 바꿔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옵서버’가 아니라 ‘주도적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사실 북한이 2006년, 2009년, 2013년, 2016년에 핵실험을 했다. 지금까지의 경향을 계속 유지한다면 2019년께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다수의 미국 핵전문가들이 전망하는 것처럼 4년 후인 2020년에 북한은 최소한 20개, 최대한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무기 완성단계에 들어가면 기술개발 주기가 짧아지므로 향후 2년 안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핵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다만 북한이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그 해 12월 다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인공위성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전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수소폭탄’ 추가 핵실험을 할 것으로 보나?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대외적으로 더 호전적인 경향을 보여 왔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12년 4월과 12월 장거리로켓을 발사했다. 2013년 2월 12일에는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올해 1월에는 4차 핵실험을 했고 곧이어 2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이 지난 1월 ‘시험용 수소탄’을 갖고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4.8~5.2 지진 규모로 볼 때 ‘시험용 수소탄’은 한국과 서방 세계의 기준에선 원자 폭탄보다는 기술적으로 앞서지만 수소 폭탄에는 못 미치는 ‘증폭핵분열탄(또는 증폭핵무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이번에 핵실험의 위력이 20kt을 초과하지 않도록 일부러 위력을 낮추어 설계했고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약 2배의 증폭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앞으로 증폭률을 더욱 높인 ‘수소탄’을 갖고 다시 핵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북한 내부 장악력에 대한 관측이 엇갈린다. 김정은의 통치력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나?

“주목할 점은 김정은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도의 엘리트 장악력과 ‘대중적 친화력’을 갖고 안정적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현재 북한에서 김일성이 환생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김일성의 외모를 닮은 대중 친화적인 청년 지도자,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민생형 지도자, 미국과 한국에 대해 강경하고 대담하게 맞서는 ‘선군영장’, 정치적 저항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권위주의적인 독재자 등의 복합적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 내부 권력을 짧은 기간에 장악했다면 그 요인은 뭔가?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후 단 4개월 만에 군대의 최고직책인 최고사령관, 노동당의 새로운 최고직책인 당 제1비서, 국가의 새로운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돼 뛰어난 정치적 장악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북한에서 단기간 안에 군주제적(君主制的)인 권력세습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은 김정은의 강력한 권력 의지와 확고한 군부·공안기관 장악,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김정일의 유훈의 영향력, 군주제적인 권력 승계를 정당화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또 김경희 등 친인척 세력의 지원과 최룡해로 대표되는 항일빨치산 2세대의 지원, 대안 세력의 부재,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스탈린식 정치문화와 공포정치, 그리고 철저한 정보통제로 인한 주민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낮은 정치의식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정성장 인터뷰 사진 11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7일 “김정은 집권 이후 군부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 들었고 김정은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됐다”면서 “북한의 군사 간부들은 정치 간부들의 통제와 현재 보위사령부 감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 군부에 대한 장악력은 어떻게 보나?

“김정일 사후 계속적인 인사 개편을 통해 군대에 대한 김정은과 당의 장악력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노동당 간부들과 북한군 정치 간부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전통적인 군부 엘리트인 군사지휘관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2012년 4월 군부의 최고직책인 총정치국장에 당 엘리트인 최룡해가 임명됐다. 2014년 4월 후임자로도 군부 인사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던 황병서가 임명돼 군대에 대한 당의 우위와 통제가 보다 확고해졌다.

군대에 대한 당의 지도를 담당하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상무위원 또는 위원 지위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2013년 3월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후 군사간부들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원도 아닌 후보위원 직에 선출돼 그 위상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최근까지 정치간부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단 한 차례 교체돼 매우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군령권을 행사하는 총참모장은 네 차례, 군사외교와 군대 후방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은 다섯 차례나 교체돼 군사간부들의 지위가 매우 불안정해졌다.

북한의 군사간부들은 정치간부들의 통제와 현재 보위사령부(보위국) 감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그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이 ‘지도자 수업’ 받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북한 내부 장악력과 통치력이 약할 수 밖에 없어 김정은 정권이 불안정하다는 관측도 제기되는데?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은이 2006년 말경에 ‘수령의 후계자’로 내정됐다. 2008년 말 경에 후계자로 결정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때까지 북한을 김정일과 공동으로 통치했다. 한국을 포함해 외부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그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10년 9월 28일 북한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 개최 전날까지도 북한 외부에서는 김정은이 당대표자회를 통해 후계자 지위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군사 분야의 제2인자 직책에 임명돼 후계자 지위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북한 외부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섭정하는 군부 집단지도체제가 출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군부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장성택은 2013년 12월 종파혐의로 처형되었으며 김정은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됐다.”

-북한 경제 분야의 개혁·개방 정책은 어떻게 전망하나?

“김정은은 경제 분야에서는 김정일보다 더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경향을 보인다. 2013년 5월 북한은 중국식 경제개발구법을 채택하고 그 해 11월 13개의 경제개발구와 신의주특구 설치를 발표했다.

그 이후 김정은시대 지정된 경제개발구는 20곳으로 늘어났다. 2014년 2월 김정은은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 대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분배에서 평균주의는 사회주의 분배 원칙과 인연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균등분배 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2010년에는 공식적 시장이 200여 곳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00여 곳으로 늘어났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 추진하기에 유리하게 구성돼 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4년 반 유학해 선진자본주의를 직접 장기간 체험한 인물이다.

군부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당 엘리트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개혁 성향의 박봉주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내각 총리에 임명돼 경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경제개방 정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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