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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허 회장도 합법적 절세의 유혹은 피해가지 못하는 듯 싶다. 허 회장은 자신의 재산 규모를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는 진정한 부자다. 그런 사람도 세금 앞에서는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듯하다.
2년전 허 회장이 같이 살던 노모로부터 서울 용산구 이촌동 LG한강자이아파트 펜트하우스를 물려받는 과정을 보면 이런 실망감을 떨칠 수 없다.
공부상으로만 보면 허 회장은 노모와 거래대금을 35억원으로 흥정한 뒤 매매계약서에 서로 도장을 찍고 펜트하우스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매매계약을 한 덕분에 허 회장은 증여로 물려받았으면 냈어야 할 세금을 최소한 9억원 정도 아낀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허 회장 모친은 85세의 고령이고, 특별히 빚이 많았다는 정황도 없으며, 허 회장과 모친은 그 펜트하우스, 같은 집에 주소를 두고 함께 살고 있었다.
이런 점에 비춰 이 펜트하우스 명의 이전의 실체적 진실이 매매나 교환 등 일반 상거래라고 보기는 힘들다. 노모가 아들에게 함께 살던 집을 돈 받고 그 아들에게 판다는 것이 통념에 맞지는 않는 것이다. 증여나 사전상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의 근원은 법률과 세무당국에 있다. 허 회장 같은 거부라 하더라도 그가 철저한 애국자나 도덕군자가 아닌한 합법적인 절세의 길이 있다면 당연히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직계존비속간 부동산 거래의 경우 그 형식 여하를 떠나 일단 증여로 보고 실제 금융거래 내역과 매수자의 자금원 등을 조사한다고는 하지만 허점이 너무 많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을 위한 합법적 절세 방법을 법과 정부가 권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 회장 같은 부자들이야 그 정도 자금출처를 증빙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매매계약 체결 이후에도 그 대금이 다시 매수자에게 흘러들어 가는 지 10년이고 20년이고 두고두고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 부동산 거래의 경우 아예 계약 형태를 증여 또는 상속으로 통일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세수가 8조원 넘게 부족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부족한 세수를 메꾸기 위해 별 궁리를 다하고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줄인다, 담뱃세를 높인다 등등. 결국 서민 호주머니 털어서 부족분을 채우겠다는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다.
이런 마당에 한건만 제대로 해도 수억원을 거둬들일 수 있는 부동산 증여세의 법체계를 정의관념에 맞게 바로잡겠다는 생각을 박근혜 정부가 왜 안하는 지 모를 일이다.
허 회장이 증여가 아니라 매매계약으로 노모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은 것을 현행법상 무어라 탓할 수는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어려운 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허 회장 같은 최고위 리더가 이런 정도의 수준밖에 안되고, 또 이를 합법적으로 조장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