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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이는 기회의 땅, 영종도를 굽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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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원 기자

승인 : 2014. 04. 04. 17:45

윤광원의 이야기가 있는 걷기(제103회) - 백운산
백운산1
백운산 정상에서 본 신도, 시도, 모도
백운산2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처음 창건했다는 용궁사
인천앞바다의 섬 영종도(永宗島)가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최근 영종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 복합리조트에 대한 사전심사에서 적합 판정을 내림에 따라, 복합리조트가 위치한 ‘미단시티’ 뿐만 아니라 영종지구 전체의 개발사업들이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

외국인 전용 카지노 적합 판정 이후 미단시티 내 토지 매입 문의가 이전보다 3∼4배 정도 늘었고, 중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한 방문 상담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카지노 복합리조트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영종도내 ‘왕산 마리나 리조트’, 동북아 관광허브 조성을 위한 ‘드림아일랜드’, ‘용유·무의 관광단지’ 등도 탄력을 받게 돼 영종도가 장차 동북아를 대표하는 관광 허브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렇게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종도를 한 눈에 굽어보며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곳이 백운산(白雲山)이다.

섬 중앙부에 있는 백운산은 해발 255.5m로 영종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해동지도’에 백운산이라는 지명이 보이고 금산(禁山)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또 ‘대동여지도’에는 제물포 서쪽 바다에 자연도(紫燕島)라는 섬이 보이고, 그 안에 백운산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아침저녁마다 산 정상부에 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려 있고 선녀들이 내려와 놀다 간다고 해서 백운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전한다.

과거 영종도 주민들은 백운산에 산신이 살고 있다고 여겨 산신제도 지냈다.

영종도는 조선시대에 영종진(永宗鎭)이 설치돼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됐고, 백운산 정상에는 봉수대도 설치돼 있었다.

산기슭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용궁사(龍宮寺)가 있다.

오늘날 백운산 중심부에 있는 마을을 중산동이라 부르고 서쪽에 운서동, 남쪽에 운남동, 북쪽에 운북동이라는 지명이 부여돼 있는 것도 백운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공항과 영종도 전체는 물론 인천대교와 인천항, 신도·시도·모도·장봉도 및 무의도 등 주변 섬들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서해안 최고의 조망권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백운산에 올라 영종도를 굽어보자.

인천공항철도 운서(雲西)역에서 내려 역 앞 광장을 지나 버스정류장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공항철도 밑으로 굴다리가 보인다. 굴다리를 통과해 계속 따라가니 오른쪽에 작은 근린공원이 있다.

그 공원을 가로지른 후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면 사거리 건너 공사장 옆으로 산길이 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도로 위로 생태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백운산 등산로다.

우측으로 철책을 끼고 계속 오른다.

30분 정도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능선이 펼쳐진다. 드디어 영종도 일대와 주변 일대 바다가 굽어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100여 미터를 더 오르면 정상이다.

중국 발 미세먼지 탓인지 전망이 그리 좋지 못하고 바닷바람도 제법 거세다. 쉬어갈 수 있는 제법 큰 정자도 있다.

운서초등학교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봄꽃들이 경쟁적으로 피어나고 있다.

산기슭에는 군부대 막사 같은 건물이 방치돼 있다. 이 일대에 공군부대와 활주로를 조성하려던 국방부의 계획을 주민들이 반대투쟁으로 무산시켰던 흔적이다.

하산 후 산기슭을 돌아 아파트단지와 영종중학교 뒤로 난 길을 따라 간다. 용궁사 입구로 가기 위해서다.

원래 이 절은 백운사, 혹은 구담사(舊曇寺)라고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어부의 그물에 옥부처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 어부가 바다에 버렸지만 계속 다시 건져지자, 예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어부가 이 옥부처를 백운사 관음전에 모셨다. 그 후 백운사 앞을 소나 말을 타고 지나려면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할 수 없이 내려서 지나야 했다.

그러자 백운사가 영험한 절이라고 소문이 났고 그 어부도 고기를 많이 잡아 부자가 됐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이 절에 왔다가 이런 얘기를 듣고 “옥부처가 용궁에서 나왔으니 용궁사라 하는 게 좋겠다”면서 현판을 써줬다고 한다.

옥부처는 일제 때 도난당하고 지금은 청동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절 입구에는 인천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노거수인 ‘용궁사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 등걸에 있는 커다란 구멍에는 작은 동자승 모형 2개가 있고 시주한 동전들이 쌓여 있다. 본당 뒤에는 대형 입불상도 있다.

절 뒤로 난 등산로를 조금 올라가면 ‘소원바위’가 있다.

바위 앞 소형 불상 앞에 불전(佛錢. 지폐)을 바치고 생년월일과 소원을 말한 후 절 삼배를 올린 다음 바위 위 작은 돌을 원을 그리듯 시계방향으로 돌려 자석에 붙는 듯한 느낌이 들면 소원이 이뤄지고, 가볍게 돌아가면 안 이뤄지는 소원이라고 한다.

다시 산길을 오른다.

‘만남의 광장’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봉수대(烽燧臺) 터 안내판이 있다.

경기도 ‘영종진도지’에 보면, 백운산 정상에 요망막이 있어 용궁사의 승려 1명이 황당선의 출몰을 살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요망승려 3명이 요망에서 황당선을 살폈다고 하며, ‘영종진읍지’에는 봉수직 2명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시 정상에 올랐다.

아까보다는 전망이 조금 낫다. 인천을 향해 뻗어있는 인천대교, 인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 신도·시도·모도 등이 보인다.

처음 올랐던 등산로로 다시 하산, 운서역으로 돌아와 공항철도로 귀경했다.

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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