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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의 월드투데이] 중남미 좌파 국가의 ‘대부’ 우고 차베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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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 기자

승인 : 2013. 03. 06. 13:56

* 차베스가 걸어온 길.. 미-베네수엘라 향후 관계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암과의 오랜 사투 끝에 숨을 거뒀다.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세 번 연임에 성공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종신 대통령’의 위치에 오른 차베스 대통령은 2011년 암이 발병하며 기나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를 관철시킨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투병생활 중에 대통령 선거를 치루며 야권 후보로 나온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누르고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선거를 치루며 병이 더욱 악화돼 올 1월 예정됐던 대통령 취임식장에 오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게 됐다.

차베스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도로 나눠져 있다.

국내 빈민층과 중남미 좌파국가 수장들의 지지가 견고한 반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독재자’로 그를 바라봤다.

국내에서도 중산층 이상 국민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빈민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펼친 복지정책이었다.

2005년부터 추진한 ‘페트로카리브’ 프로그램은 역내 국가들에게 국제 시세보다 싸게 원유를 공급하며 경제적 버팀목 역할이 됐다. 이로 인해 차베스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반면 만 14년 간의 집권기간 1000개가 넘는 외국 기업을 제멋대로 국유화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언론사 등을 거세게 압박하면서 시장원칙과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적대전선을 형성한 쿠바와 이란 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국가들과 평행선을 달렸다.



◇ 차베스 대통령의 성장기

1954년 7월 수도 카라카스 남서쪽 시골마을인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어린 시절 야구 선수와 화가를 꿈꿨다.

가난했던 탓에 큰 형인 아단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해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사관학교에서부터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인 그는 젊은 군 장교를 중심으로 정치그룹을 조직해 지도자로서 야망을 키웠다.

1992년 동료 장교들과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됐지만 그는 “모든 것을 홀로 책임지겠다”며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2년간 감옥생활을 마친 후 차베스는 정치인으로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1994년 3월 석방된 차베스는 정치 혁신을 모색했고 과거 사회주의 모임이었던 ‘볼리바르혁명운동(MBR-200)’을 ‘MVR(제5공화국운동당)’로 개칭한 뒤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과 연대해 좌파연합인 애국전선(PP)을 결성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56%가 넘는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올랐다.

이후 기존 의회를 해산하는 ‘제헌의회’ 전술을 통해 도입한 ‘신헌법’ 아래에서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치러 다시 권좌에 올랐다.

2002년에는 반대파들의 총파업과 쿠데타로 위기를 맞았다.

2002년 4월 12일 쿠데타로 실각한 차베스 대신 페드로 카르모나 상공인연합회장이 임시대통령에 올랐으나 차베스의 지지자들의 시위가 거세지고 군부 내 분열이 발생하며 임시정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를 틈타 이틀만인 4월 14일 차베스는 대통령궁으로 돌아왔다. 대통령궁에 복귀한 그는 쿠데타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최대 노조연맹인 CTV와 재계가 연합 총파업에 돌입했다. 다음해 1월에는 베네수엘라 은행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하지만 장기화되던 파업은 2003년 2월 실패로 결국 끝났다.

극심한 정치적 위기를 겪은 후 가진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빈민층의 지지 속에 3선 가도에 성공하며 장기집권의 꿈을 완성했다.

하지만 2011년 암이 발병했다. 그는 쿠바에서 수술을 받으며 본격적인 암 치료에 돌입했다.

2012년 3월 암 재발을 시인한 차베스는 같은 해 7월 완치됐다면서 ‘암 해방’을 선언했지만 대선을 치루는 동안 병은 극도록 악화됐다.

급격히 쇠약해진 차베스 대통령은 올초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으며 1월 예정된 4기 정부 취임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정부는 차베스의 건강이 호전됐다며 ‘위독설’을 일축하면서 회복을 기원했지만 5일 결국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베네수엘라-미국 관계 호전되나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미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 사망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한다”며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역사에 새로운 장이 시작하는 지금 민주주의 원칙들, 법 질서, 인권 존중 등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미국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도 지난달 8일 정례브리핑에서 “탱고를 추려면 짝이 있어야 한다”면서 “관계 개선을 위해선 우리의 의지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측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베네수엘라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베네수엘라-미국 관계의 회복은 차기 정부에게 달려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후임 지도자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한달 내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과 야권 통합연대(MUD)의 엔리케 카프릴레스가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 대통령이 말년에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관계는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6년 유엔총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사람으로 치면 좋은 남자”했고, 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내가 미국인이라면 오바마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 부통령은 연초에 미국으로 특사를 보내 양국 간 관계 복원을 위한 비밀 회담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비관론도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가 미국 대사관 직원 2명을 간첩 행위 혐의로 추방한 것과 관련, 미-베네수엘라 간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아스 하우아 외무장관은 이날 미국 대사관 소속 공군 관계자 2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인물)’로 지목하고 추방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차베스 대통령이 와병 중인 틈을 타 베네수엘라 군 관계자와 허가 없이 접촉해 군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정정 불안을 조장하는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하우아 장관은 또 추방 명령이 추가로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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