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양성 시스템에 큰 변혁을 가져오며 다원적인 법조인 양성을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13일 사법시험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지원자는 전년(8795명)보다 1167명(13.3%) 줄어든 7628명이다.
이는 LEET가 도입된 2009학년도 시험(1만960명) 이후 역대 최저치로, 결과적으로 예년에 비해 올해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로스쿨 입학이 끝이 아니다. '취업'이라는 험난한 관문이 로스쿨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연간 1000만~2000만원의 학비를 내며 공부한 로스쿨 졸업생들이 올해 처음으로 배출됐으나, 갈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부 로스쿨이 취업통계 공개를 거부함에 따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전체 취업률은 40%를 상회하기는 힘들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최근 진행된 대한법률구조공단 일반직 7급직원 공채 필기시험에서 로스쿨 졸업생 전원이 불합격하며, 기존의 사법시험 출신 법조인보다 실력이 뒤떨어질 것 같다는 일각의 비판을 또다시 감수해야만 했다.
이처럼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2017년 이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서 열린 '법학교육 정상화와 법조인력 양성제도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사법시험 존치 필요성이 대두돼 관심을 끌었다. 이 자리에는 법과대학 교수와 로스쿨 재학생, 시민단체, 변호사 등이 참석해 로스쿨 제도의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제1주제 발표자로 나선 장용근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적 관점에서 본 현행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며,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논란이 된 주요 쟁점을 검토했다.
장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에 관한 법률 제5조 등은 수급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을 규정해 놓고 있다"며 "(헌재는) 그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어느 정도가 수급상황에 맞는 적절한 규모인지 정확한 판단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을 만들어 이러한 목적보다 상위인 대국민서비스의 향상을 저해시킬 우려마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 입학정원수를 결정할 권한을 교육부장관에게 위임한 것은 예측가능성의 대원칙을 무시한 위헌적 규정"이라며 "설치인가 심의기준 자체가 위원들의 주관적·자의적 평가에 의존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절차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알권리 침해가 문제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장 교수는 "당초 로스쿨 제도 도입의 주요 목적 중 하나였던 지역 간 편차의 해소는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지 오래"라며 "로스쿨 학비 부담이 커지면서 법조 직역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으며, 순수법학 교육 존립에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법조인력 양성제도 개선방안'이란 주제로 제2주제 발표 강연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현행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로스쿨생의 실력저하와 법조생태를 무시한 공급자 일변도의 탐욕과 무지, 비싼 로스쿨 학비, 장학재원과 사회적 배려 등의 허구성, 로스쿨을 통한 불평등의 세대 간 이전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사법시험 제도 존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교수는 "사법시험은 다양한 계층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사회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다수의 응시생들이 각계에서 법적 사고로 법치주의 문화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며 "현행 변호사시험처럼 사법시험 응시 제한 등을 할 경우 고시낭인의 폐해를 시정할 수 있으며 법조 경쟁력 강화와 법률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개최한 전국법과대학협의회 성민섭 회장(숙명여대 법과대학장)은 "토론회가 법학교육 정상화와 법조인력 양성제도 개선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마중물(펌프에서 새 물을 뿜어 올리고자 먼저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기능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민섭 학장은 "아무리 로스쿨의 제도적 취지가 좋아도 법조인 양성의 길이 로스쿨로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 학장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육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연적으로 소외계층과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 입장을 대변할 법조인이 줄어들고, 법제도가 기득권층을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정비돼 법률 소외계층이 늘어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로스쿨이 올해로 출범 4년째를 맞이하면서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 등 태생적 한계가 로스쿨 합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1년까지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생 5074명을 상대로 거주지 정보를 분석한 결과, 전체 재학생의 61.4%가 서울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중앙일보 조인스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법조인 8115명(사법연수원 34기 이상)가운데 서울 출신이 18.7%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볼 때 3.2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서울 출신 비율이 낮았으나, 로스쿨 체제로 바뀌며 서울 출신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소위 부촌으로 알려진 강남 3구(강남 6.0%·서초 6.4%·송파 4.3%) 거주 비율은 16.7%에 달해 로스쿨생 5명 중 1명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주택 가격이 낮은 금천(0.6%)·도봉(1.3%)·중랑(1.0%)구에는 수십 명에 불과해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 속에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다양한 전공과 출신지역, 사회계층, 전문경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로스쿨 업무를 관장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변호사 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 등 관계기관이 로스쿨 제도의 부작용을 잠재울 어떠한 대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