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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관 기자

승인 : 2012. 05. 14. 16:17

*[김문관의 클래식산책](69)
스승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지휘자 정명훈과 그의 스승이자 2005년 아쉽게 타계한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사진)와의 미담을 소개합니다.

1914년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줄리니는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한 후 1948년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데뷔한 후 평생을 세계 최고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살다갔습니다.

특히 1978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후 독일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 등에 남긴 불멸의 명연주 음반들은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정명훈이 줄리니를 처음 만났던 때는 정씨가 18세때 영국 런던에서였습니다.

정씨는 "줄리니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였는데 작품의 핵심을 짚어내는 강렬한 연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며 "피아노 선생인 마리아 쿠르초의 소개로 그를 무대 뒤에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그가 내 인생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정명훈이 줄리니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LA에서 입니다. 

앞선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정명훈은 공동 2위를 하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죠. 

그는 미국국적이지만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됐었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노와 지휘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정명훈은 1978년 오디션을 거쳐 줄리니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지휘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됩니다. 

1980년에는 줄리니의 발탁으로 이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까지 오릅니다.

줄리니 당시 그에게 “당신은 타고난 지휘자”라며 피아노와 지휘 사이를 고민하던 그에게 확신을 안겼다고 합니다.

정명훈의 초기 레코딩 중 베르디 등 이탈리아 계의 음악이 찬사를 받았던 이유도 줄리니의 영향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특히 당시 두 사제간에 있었던 아래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정명훈이 LA필하모닉에서 3년간 줄리니의 어시스턴트로 지낼 당시, 소심했던 그는 1년이 지나도록 감히 줄리니에게 단 한 번의 질문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곡이 너무도 난해해 고민하다 마침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왜 이 곡은 소리가 좋지 않을까요?"
 
줄리니는 당연히 즉시 답을 말해줄 실력이 있는 지휘자였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네. 그러고 나서 이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며칠이 지난 뒤 줄리니가 정명훈을 불러 해준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정명훈 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는 애송이 지휘자에게 이렇게 쉽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클라리넷 소리를 더 높이고 호른은 조금 더 부드럽게 해 봐. 그럼 소리가 더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줄리니는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제자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준 것이죠. 

정명훈은 지금도 그런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이후 정명훈은 줄리니가 달아준 '날개'로 유럽까지 날았습니다. 

이탈리아ㆍ독일ㆍ프랑스를 차례로 섭렵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그에게 사상 최대의 연봉을 제시하고 그를 상임지휘자에 앉혔죠.

DG에서도 정명훈의 앨범을 잇따라 냈습니다. 당시에 남긴, 메시아, 베를리오즈, 생상스, 라벨 등 프랑스음악 연주는 지금까지도 명연주로 칭송됩니다.

특히 작년 서울시향을 이끌고 DG와의 전속 계약을 맺은 행보에도 위와 같은 정씨의 세계적인 커리어가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아마 하늘에서 줄리니가 승승장구하는 정명훈을 보며 방긋 웃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모두 스승의 날을 맞아 바쁜 삶에 잊고 있었던 인생의 스승님들을 기억해봐야겠습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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