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대지진 그후 1년] “일본인의 단점 모두 드러났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608993

글자크기

닫기

조은주 기자

승인 : 2012. 03. 11. 17:23

* 재일 조선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 인터뷰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 /사진=조은주 기자
[아시아투데이=조은주 기자]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일본 국민 대다수의 습관, 문화였을 뿐입니다." 

재일조선인 저술가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가 본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인의 모습은 '차분함'을 강조하던 서양 언론의 시선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이어 지난해 일어난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에 대해 "일본사회, 일본인의 단점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원전 사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탈원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 교수를 대지진 1주년을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만났다.

일본인들은 지난해 사상 초유의 대재앙을 겪고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전철을 타고 회사에 복귀하는 등 차분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를 본 당시 해외 언론들은 "믿을 수 없다"며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일본인의 특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은 모두 회사 인간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보다는 회사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게 더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안전, 피난 여부에 대해 개개인이 판단을 할 수 없고 회사나 상사가 판단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 양식은 이번처럼 신속한 대피가 요구될 때 큰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일상으로 복귀한 일본인의 모습은 서양인들이 칭찬할만한 '도덕성'이 발휘된 게 아니라 그저 결단을 내리지 못한 모습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동조(흐름)주의' 경향까지 나타났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개개인의 판단이 아닌 옆사람, 직장 상사, 기득권의 눈치를 보고 이 흐름에만 맞춰가는 태도. 서 교수는 이를 '동조주의'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일본 정치 사상사의 권위자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줄곧 주장하던 일본인의 유형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전쟁 당시 미국, 영국 등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절대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쟁을 계속했고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로 수십만명이 희생된 후에야 백기를 들고 말았다. 

패전 후 재판을 받던 한 군인은 "개인으로서는 이 전쟁에 대해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의문이 있었는데도 사회의 흐름에 따라 전쟁에 임했다"고 증언했다. 주체적인 판단이 아닌 정부, 관료, 기득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는 의미다. 

또 이는 권한,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고 서 교수는 덧붙였다. "나는 그냥 남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니까요."

전쟁이 끝난지 60여년이 흘렀지만 일본인의 자세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고 서 교수는 설명했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경제적으로 성장할 때는 이런 점들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치명적인 사태가 벌어지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게 되는 거죠."

그의 주장대로 대지진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전 사고와 관련해 문책을 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특히 일본 언론의 보도 행태는 동조주의의 단적인 예라고 그는 밝혔다.

"원전 폭발 사고, 쓰나미 영상 등은 대부분 CNN 등의 외국 언론 매체에서 보도된 것입니다. 또 미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원전 반경 80km 밖으로 철수하라고 권고했는데 일본 언론들은 정부의 말대로 경계구역 20km만을 고수했습니다."

수많은 언론사들이 누구 하나 의문을 갖지도 않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결과라고 서 교수는 비난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방사능 피해는 하루 아침에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도 7년 후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후쿠시마의 경우엔 3~4년 후쯤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막대한 복구 비용과 보상액, 장기적인 탈원전 계획이 요구되지만 이를 감당할수도 없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는 정부는 과소평가, 축소를 위해 힘쓸 게 뻔합니다. 여기에 언론과 학자들도 동조해 나갈 것이고요."

서교수는 또 원전 인근 지역 주민, 특히 조선인에 대한 차별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NHK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후쿠시마현을 방문했던 그는 "고오리야마에 조선학교가 하나 있는데 일본 정부가 공식으로 인정한 학교가 아니어서 오염 제거 작업 비용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지진 당시 이 곳은 마을 주민들의 피난처로 쓰였고 동포들이 보내준 물자로 꽤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상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식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원전 출신에 대한 차별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차별까지 겪어야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오히려 원전 수출의 호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일본의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원전의 위험성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는 "중국, 한국, 일본 지역이 세계에서 원자력 가장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라면서 "탈원전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TV를 통해 원전 폭발 장면을 처음 접하고 "현실인지 아닌지, 얼마나 큰 사고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원전의 무서움이 바로 이겁니다.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죠."


조은주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