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방과후학교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덕성여중(교장 김영숙)을 찾아 “이것이 대통령으로서 내가 꿈꾸는 교육현장”이라고 극찬했다. 방과후학교가 사교육의 구렁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방과후학교다.
방과후학교는 학교에서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후 다양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방안이다. 학교의 교육기능을 보완하고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목표에 포함돼 있다.
정부는 2006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돼 오던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을 방과후학교로 통일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모든 초·중·고교의 99.9%가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방과후학교는 모든 학교가 일정한 법령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 사항은 아니다. 방과후학교 운영의 권한은 학교장에게 위임돼 있다. 각 학교마다 방과후학교의 교육프로그램과 운영시간, 운영방식, 수강료 등이 다른 이유다.
교과부도 방과후학교 운영과 관련, 각 학교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 감독은 하지 않는다. 지난해 학교자율화 조치가 발동되면서 방과후학교에 대한 운영이 각 시·도교육청의 자율적인 사안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신 교과부는 큰 틀의 지원과 제도 보완 역할을 담당한다.
교과부 학력증진지원과 관계자는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방과후학교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 제도 개선에 나서고 우수사례를 발굴해 확산시키는 한편, 방과후학교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막힌 부분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방과후학교가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각 시·도교육청에 지방비재원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과후학교 운영 현황
방과후학교는 명칭 그대로 학교의 모든 정규 수업이 끝난 뒤부터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의 경우, 저학년은 오전수업을 마친 후 학교에서 급식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고학년은 오후 수업이 끝난 2~3시부터 방과후학교에 참여한다. 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는 대부분 오후 5시 이전에 끝이 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방과후학교는 초등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길을 위해 밤 9시를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육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학업 및 대학입시와 관련된 과목도 있고, 미술과 음악, 체육, 컴퓨터 등 학생들의 감성을 기르기 위한 과목도 개설돼 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일원초등학교는 지난해 15개 안팎의 방과후학교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그 전 해에는 20여개의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매년 개설되는 과목 수가 다른 이유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일원 초등학교 관계자는 “해마다 12월경 학생들을 상대로 방과후학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다”며 “설문조사를 통해 아이들이 다음해에 받기를 원하는 수업의 과목과 지원자 수를 종합해 프로그램을 개설한다”고 말했다.
일원초등학교에서 인기있는 방과후학교 과목은 영어나 과학 등 학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이 아니다.
논술, 바둑, 종이접기, 축구교실, 바이올린, 플롯, 한자교실 등이 인기가 많다. 학생들이 방과후학교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방과후학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수강료가 저렴하다는 것.
일원초등학교의 경우, 3개월마다 한 과목의 수강료로 2만5000원에서 3만원을 낸다. 학생수가 적은 반은 3만원이고, 학생수가 많은 반은 2만5000원이다.
한달 평균 1만원씩인 셈이다.
◇수업 진행 현황
방과후학교의 수업은 대부분 외부 강사가 맡아서 진행한다. 학교 교사들이 일부 과목을 맡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몸이 피곤해서”라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서울 A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박은해(가명) 교사는 “우리 학교는 방과후학교의 전 수업을 외부강사가 맡고 있다”며 “선생님들이 하면 좋겠지만 수업이 끝나도 할 일이 많고 하루종일 학생들하고 씨름하고 나면 몸이 피곤하다. 방과후 수업까지 맡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 강사가 수업을 맡다보니 문제점도 발생한다.
담임 선생님이나 학교 교사들처럼 책임감 있는 지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사는 “외부 강사들은 와서 의무적으로 수업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수업도 수업이지만 애들에 대한 지도도 함께 해야 하는데 외부강사들은 그런 부분에 무신경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외부 강사의 경우 한 학교만 맡는 것이 아니라 요일별로 각 학교를 돌아다니며 같은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지급되는 강사료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45분짜리 수업 한 과목에 3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학교에서 같은 과목을 하루에 2~3차례 강의한 후 다음날에 다른 학교에서 같은 과목을 비슷한 스케줄대로 다시 강의하는 식이다.
외부 강사는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강의가 가능하다. 교과부 역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담당할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단위학교에서 인정하는 모든 현직교원, 외부강사, 자원봉사자 등 지역사회의 가용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확보하여 활용’한다고 지정하고 있다.
◇교사들의 사명감이 중요
모든 외부 강사가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성의한 수업으로 방과후학교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서울 A초등학교의 이도운 학생(5학년)은 “방과후학교가 싫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태권도학원에 가야 하는데 방과후학교 끝나고 가면 시간도 늦고 몸이 힘들어서”라고 답했다.
이군은 작년에 방과후학교에서 원어민영어와 체육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방과후학교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도 학원에서 해방되지 않는다. 태권도학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니고, 영어 학원은 월, 수, 금 3일을 가야 한다.
이군은 “예전에는 학교 끝나면 집에 가서 오락도 하고 동생하고 놀다가 학원에 갔는데 요즘엔 집에 가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한다”며 “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방과후학교가 제 기능을 못하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만 늘리는 결과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방과후학교의 성공열쇠는 '충실한 수업'에 있으며 그 주역은 교사들이라고 지적한다. 방과후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나서 또 다시 학원에 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충실한 수업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학교 교사들은 뒷짐을 진 채 외부 강사에게만 모든 것을 위임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 강사들은 시간제 강사라도 ‘사명’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조언이다. 방과후학교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학교들을 언제나 열정을 갖고 팔을 걷어부친 학교 교사들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외부강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방과후학교의 강의를 아르바이트로 생각하지 말고, 천직으로 생각하려는 자세와 함께 더욱 재미있고 창조적인 교육 커리큘럼 개발과 학생들과의 소통기회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자서 하기에 힘이 부칠 때는 방과후학교 전문 강사들끼리의 모임에 참여해 정보를 교환하고 전문성을 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 방과후학교 외부강사들의 모임인 방과후학교예능연구회는 주기적인 전시회와 워크숍 등을 통해 강사들의 수준 향상을 도모하고, 여러 가지 창조적인 강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