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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의 안보정론] 시리아 사태의 교훈과 한국의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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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1. 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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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을사(乙巳)년 새 아침은 밝았지만, 대한민국은 일모도원(日暮途遠) 나그네의 처지다. 국내 정치가 혼란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국제 안보정세도 여전히 어지럽다. 작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안보 사태들은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며, 시리아 사태도 그중 하나다. 13년 동안 이어졌던 시리아 내전은 작년 12월에 끝났다. 러시아와 이란의 '돌봄'에 힘입어 54년 동안 군림했던 알아사드 부자(父子)의 독재정권은 '돌봄 선생님들'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린 사이에 반군의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럼에도 시리아의 밝은 미래가 예약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내전을 예고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시리아 사태는 한국의 안보에도 뼈아픈 교훈과 무거운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신냉전 대결 구도하에서 대만해협과 함께 다음 전장(戰場) 후보지로 부상한 한반도, 폭주하는 북한의 핵위협, 불길한 주한미군의 전투력 감축 움직임, 'America First' 열풍과 함께 불투명해지는 한미동맹의 미래, 국내정치의 불안정 등의 현실을 보면서도 한국의 안보가 계속 무탈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아 사태가 주는 당장의 교훈은 정치가 불안할수록 국방과 외교에 공백과 차질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허무하게 무너진 독재자의 철옹성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사태로 러시아와 이란이 지원을 중단하자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또 다른 수니파인 시리아국가군(SNA),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 등은 지난해 11월 27일 북부 알레포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11일 만인 12월 8일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시리아의 도살자' 알아사드 대통령은 직전에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도피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영혼이 떠난 오합지졸이 되어 고가의 군사장비들을 버리고 내뺐다. 독재자의 철옹성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그가 3만명 이상의 반대자들을 처형했던 세드나야 감옥의 내부가 공개되면서 세계는 경악했다.

지원세력이 손을 떼기가 무섭게 무너진 사례는 이 말고도 많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포성이 멎은 후 남베트남이 반미·반정부 시위로 혼란을 거듭하자 월맹군은 1975년 1월 8일 평화협정을 깨고 남침을 재개했고, 넉 달도 되지 않은 4월 30일 월맹군은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제 전차들을 앞세우고 사이공에 입성했다. 남베트남군은 미군이 제공한 전투기, 전차, 총, 군복 등을 내던지고 팬티 바람으로 도주했다. 전쟁이 재발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미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다. 2021년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탈레반은 '멘붕'에 빠진 정부군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3개월 만인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했다. 탈레반은 미군이 남긴 전차와 장갑차를 타고 승리를 축하하는 퍼레이드를 벌였다.

◇내전이자 국제전 그리고 종파전쟁이자 민주화 전쟁

이 내전에서 당장의 승자는 수니파 반군과 독재에서 풀려난 시리아 국민이고 패자는 알아사드 정권이다. 하지만 국제전, 종파전쟁, 민주화 전쟁, 독립전쟁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복합적인 내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튀르키예, 이스라엘, 미국, 쿠르드족 등은 승자로,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이슬람 시아파가 패자로 분류될 수 있다. 튀르키예는 자신이 지원하는 HTS 조직이 내전 승리의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을 얻었고,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을 계기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초토화시킨 데 이어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하던 군사장비와 시설들을 파괴함으로써 미래의 화근들을 제거했고, 동시에 골란고원의 완충지대를 확대하는 군사적·영토적 이득을 챙겼다. 미국은 개입을 자제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지원하는 쿠르드족 반군 SDF를 통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얻었고,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족은 위로를 얻었다.

반면 러시아는 중동·아프리카·지중해를 관장하는 교두보이자 중간 기지인 시리아 내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이란은 대리 세력을 통해 이스라엘을 건드렸다가 강력한 반격을 받아 상처를 입은 데 더하여,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그동안 구축해 온 '저항의 축', 즉 이란, 이라크, 시리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을 잇는 시아파 벨트가 파괴되는 아픔을 당했고,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지중해로 가는 육로를 상실할 위기를 맞았다.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면서 '반미·반이스라엘' 기치를 내걸고 중동의 패권국으로 등극하려 했던 이란으로서는 뼈아픈 패배가 아닐 수 없다.

반군세력 간의 관계도 복잡하다. 내전 승리를 주도한 HTS가 집권한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를 버리겠다는 그동안의 약속을 저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그렇게 되면 내전 동안 함께 싸웠던 다른 반군 세력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튀르키예는 HTS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HTS가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미국은 쿠르드족 반군 SDF를 지원해 왔지만, 튀르키예는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등 4개국에 흩어져 살면서 집요하게 독립국가를 추구해 온 쿠르드족을 안보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간 그리고 나토(NATO) 동맹국인 미국과 튀르키예 간 이해 상충이 발생할 소지는 상존한다.

◇시리아 사태의 교훈 되새기고 외교·국방 공백 막아야

시리아 사태는 한국에도 엄중한 교훈들을 주고 있다. 시리아가 종파 간, 세력 간 그리고 국가 간에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처럼, 한국도 핵무장 북한과의 안정적인 공존, 한미동맹 유지 발전, 한·미·일 안보공조 및 생산적인 한일관계, 한중 및 한러관계의 안정적 관리 등 무수한 과제들을 안고 있다. 하나를 중시하면 다른 하나가 희생되는 제로섬적 관계에 있는 과제들을 조화롭게 관리한다는 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 그래서 한국은 아무나 지도자가 되고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되는 나라다. 이들 과제를 현명하게 관리·조정하지 못하면 한순간 전쟁의 그림자가 한반도를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리아 사태가 주는 최대의 당면 교훈은 군대가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생존하지 못하고, 동맹은 소중하지만 그런 나라에 군대를 보내줄 동맹국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1930~194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조 루이스는 23차례나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한 후 도전자가 없어 스스로 은퇴했다. 12년 동안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는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 어떤 도전자와도 맞설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해 왔다는 말이었다. 1977년 홍수환은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 경기에서 파나마의 무패 강타자 카라스키야에게 2회전에서 네 번이나 다운을 당했지만 3회전에서 회심의 왼손 훅으로 '기적 같은 KO승'을 거두고 '4전 5기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카라스키야는 승리를 확신하고 잠깐 방심했다가 상대의 기습에 무너졌다. 안보도 그런 것이다.

한국군이 적에게 '기적 같은 KO승'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대장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중립을 엄수하는 가운데 '자강' 의지로 무장하고 루이스처럼 항재전장(恒在戰場)의 태세를 견지해야 한다. 적이 도발하면 홍수환의 왼손 훅과 같은 회심의 일격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것이 도발을 억제하는 길이고 강건한 동맹도 지켜내는 길이다. 적에게는 무서운 맹수가 되어야 하고 내국민에게는 친절한 양 떼가 되어야 한다. 안보정세가 엄혹하고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 의지와 태세가 실종된 군대는 자신과 부모 형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조국의 패망을 초래한다. 시리아 사태는 이런 교훈을 뼈저리게 상기시켜 주었다.

김태우(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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