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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지구인을 관찰해 온 외계인 미도가 내게 물었다.
"지구인의 문명사는 지혜의 축적과 지식의 전파를 통해 이뤄진 듯합니다. 지혜의 축적은 세상에 살면서 뼈저리게 배운 교훈을 후대에 전해주려는 지구인의 강력한 교육 의지를 보여줍니다. 지식의 전파는 그 어떤 기술이나 생각이나 제도라도 조금이라도 유용하면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배우려 하는 지구인의 학습 근성을 말해주겠죠? 수레바퀴가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좀 더 설명해 주세요. 그 과정 역시 지혜의 축적과 지식의 전파로 설명될 수 있을까요?"
기원전 4000~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선 바퀴를 썰매(sledge)에 달아서 수레로 만드는 기술 혁명이 일어났다. 수메르와 같은 고대 도시에서 '바퀴 달린 운송 수단(wheeled vehicle)'이 현실에서 구현됐다는 사실은 수천 년 땅속에 묻혀 있다 발굴된 고고학 유물뿐만 아니라 비석의 부조물, 고분 벽화, 진흙 태블릿의 기록을 통해서 생생하게 증명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되어 널리 사용된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은 전파된 결과였을까? 얼마 안 지나 중동, 유럽, 서아시아의 코카서스 지역 등지에서도 수레바퀴가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수레바퀴가 전파된 구체적 경로를 고고학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한 지역의 수레바퀴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것인지, 아니면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인 발명을 이룬 것인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바퀴 달린 수레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발명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는가에 관해서도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수레바퀴의 구조를 분석해 봄으로써 그 험난한 제작 과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
◇하나의 수레바퀴를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날마다 익숙하게 부리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수레바퀴를 개발하지 못한 태고의 지구인들이 뭔가 깨달음이 부족한 저지능의 미개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은 기술·공학적으로 수레바퀴의 제작이 얼마나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무식자의 편견일 뿐이다. 당장 스스로 칼, 톱, 끌, 대패 등 기본적인 목공 도구만을 가지고 직접 손으로 바퀴 달린 수레를 만들어보라. 종이에 바퀴의 밑그림을 그리고 아무리 공들여서 수레를 만들어봐야 현실에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을 대번에 깨닫게 된다. 수레바퀴가 짐차에 부착되어 땅 위에서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여러 가지 기술적 난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손으로 잡거나 가죽끈을 묶어서 끌고 가는 썰매에 바퀴를 달아서 수레나 짐차로 활용하기 위해선 여러 기술적 난관을 넘어야만 했다. 첫 번째 난관은 바로 바퀴 제작 그 자체에 있었다. 바퀴를 수레에 달아서 끌려면 우선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만 한다. 너무 무거우면 지표면과의 마찰이 심해져서 수레로서의 효용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수레가 운송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무조건 더 적은 힘을 써서 더 많은 짐을 옮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인이 바퀴를 제작할 때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재료는 목재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진흙 태블릿이나 이집트 고분 벽화에 그려진 초창기 수레바퀴를 보면 대개 통나무 원반으로 만든 디스크(disc)형이다. 그렇게 목재로 된 원반을 바퀴로 사용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무 자체의 무게이다. 바퀴가 무거우면 쉽게 끌거나 밀 수가 없다. 무게를 줄이려고 얇게 깎다 보면 짐짝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쉽게 파손돼 버리고 만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처음엔 디스크에 구멍을 뚫는 방법으로 바퀴의 무게를 줄이려 노력했다.
디스크에 구멍을 뚫으면 확실히 무게를 줄일 수는 있지만, 뚫린 구멍의 크기가 커질수록 내구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식에 놓인 기술적 한계는 분명했다. 가볍고 튼튼한 바퀴를 만들기 위해선 신소재를 쓰거나 제작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가벼운 합금 제련의 기술이 없었기에 고대인들의 선택지는 목재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장시간에 걸친 다양한 실험과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지구인들은 바큇살을 이용해서 차륜(車輪)을 짜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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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큇살 차륜(spoked wheel)'은 가볍다는 점 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바로 굴대(axle, 축)와 바퀴의 연결을 쉽게 했다는 점이다.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만들기 위해선 가벼운 바퀴의 개발만큼 바퀴를 잡는 굴대의 개발이 중요했다. 굴대는 좌우 두 개의 바퀴를 평행하게 고정할 수 있는 튼튼한 막대를 이른다.
원형의 바퀴를 만들어서 땅 위에서 굴리면 잘 굴러가지만, 그 바퀴 중간에 굴대를 끼우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굴대 위에 수레를 올리고 수레 위에 짐을 싣게 되면 강력한 하중이 발생하여 마찰은 더욱 심해진다. 일면 단순해 보이는 장치지만, 실은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굴대가 항상 일정하게 고정력을 발휘해야만 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굴대의 양 끝은 두 바퀴 중앙의 구멍(nave, hub)에 언제나 적절하게 끼워져 있어야만 한다. 일단 바퀴 중앙을 지난 굴대는 빠지지 않도록 바퀴에 고정되어야 한다. 굴대를 바퀴에 끼우는 못을 린치핀(lynch pin)이라 하는데, 그 역시 장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굴대는 바퀴에 적당한 강도로 끼워져야만 한다. 너무 빡빡하게 끼워지면 바퀴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지만, 너무 느슨하게 끼워지면 바퀴 자체가 흔들거릴 수밖에 없다.
바퀴와 굴대의 안정된 연결이야말로 수레바퀴의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으려면 기능성과 더불어 내구성이 필수적이었다.
공들여 만든 차량인데 몇 달 못 가 바퀴가 부서지거나 굴대가 부러진다면 실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사용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실제로 현실에서 사용될 수 있기 위해선 바퀴와 굴대와 수레가 정교한 일체를 이뤄야만 했다.
◇ 바퀴 달린 짐차를 만들기 위해선
바퀴 달린 수레를 만든 후에도 또 하나의 커다란 난관을 넘어야만 한다. 바로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動力)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말이나 소의 몸에 멍에를 씌우고서 바퀴 달린 짐차(wagon)를 끌게 하는 과정도 쉬울 리가 없다.
손으로 끄는 썰매는 가죽끈(traces)이나 밧줄로 묶으면 되겠지만, 말이나 소가 끄는 짐차라면 반드시 두 바퀴 축을 연결하는 폴대(pole), 짐차를 짐승의 몸에 연결하는 끌채(thill), 그리고 끌채를 짐승의 몸에 묶는 멍에(yoke)가 있어야 했다. 끌채와 멍에는 당연히 짐차의 무게를 늘린다. 끄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선 바퀴를 잡는 굴대와 두 굴대를 잡아주는 폴대의 지름을 줄이는 게 필수였다. 또한 무거운 짐을 싣고 움직이려면 굴대는 가늘고 짧아야 했으며 차체는 폭이 좁아야만 했다. 실제로 최초의 수레는 폭이 1m밖에 되지 않는 소형이었다.
바퀴 달린 수레가 짐승의 몸에 묶여 땅 위에서 굴러가기 위해선 과연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했을까? 단정할 순 없지만, 지구인의 역사에서 수레바퀴의 출현은 돌연한 사건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집체적 연구와 반복적 실험의 결과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