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찰 100여 명 경비정 8척 동원 3일간 마을 수색 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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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여수시에 따르면 주재년 선생은 1943년 9월, 14세 나이에 조국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전파하고, 율림리로 가는 목화밭 담장에 '조선일본별국, 일본놈 져라, 조선만세, 조선지광'이라는 민족의식 고취의 글을 새겼다.
이에 일본 경찰 100여 명은 경비정 8척을 동원해 3일간 마을을 수색했으며,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자 주재년 선생은 자신이 단독으로 한 일이라고 당당히 나섰다.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그해 4월 8일 순국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편, 여수시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독립운동가유족회와 공동으로 여수 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선정하여 매월 시청 누리집, 공공기관 등에 게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독립운동가 83명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