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통령·상원선거 따라 전략 영향
반도체·모바일 AI 등 주도권 승부처
구체적 성과 위한 끊임없는 협력必
|
아시아투데이 정문경·최지현 기자 = 재계가 오는 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주시하고 있다. 부당합병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의 1심선고 결과에 따라 재계 1위 삼성의 미래가 갈릴 수 있어서다. 해외현장을 누비고 리더들과 머리를 맞대어도 부족할 판에 사법 리스크로 경영 족쇄가 채워진 상태에서 중대한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핵심사업에서 줄줄이 왕좌를 내주면서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타이틀을 15년만에 내려놨다.
스마트폰 판매량에선 13년 만에 처음으로 애플에게 왕관을 내줬다.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의 시장 지위가 위협받았다. 반도체도 2년 만에 인텔에 재역전당하며 매출 1위 자리를 뺏겼다. 메모리 사업은 2위 SK하이닉스와의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D램 시장 점유율이 5% 미만으로 줄었고 차기 각축장이 될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역시 주도권을 채 못 잡았다.
파운드리에서는 3나노 카드를 먼저 꺼냈지만 TSMC에 뒤쳐진 점유율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삼성과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인텔이 파운드리에도 공격적으로 전략을 펼치면서 2위 경쟁도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오지 못할 경쟁력의 대명사 삼성의 '초격차'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월 경제 패권을 잡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상원 선거는 삼성 투자 전략을 다 갈아엎어야 할 정도의 메가톤급 파장이 예고 돼 있다. 삼성은 올해 미국 테일러 공장의 준공과 보조금 집행을 앞두고 있는데, 선거전에 반도체 지원을 두고 정치공세가 벌어질 공산이 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선언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적극적으로 끌여들였던 것과 반대로 올해는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 '아메리칸 퍼스트'에 기반해 자국 기업을 먼저 챙기면서 보조금 지급 시기가 지연 될 수도 있다.
반도체 경쟁국 대만의 대선과 총선이 주는 영향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선, 핵심광물 대국인 인도네시아·멕시코 등의 대선·총선 등의 정치 이벤트는 글로벌 공급망과 영업판이 180도 뒤바뀔 수 있는 이슈다.
|
'위기에 진짜 실력 나온다'는 이재용 회장의 발언이 이번에도 지켜질까. 그간 삼성은 어려울 수록 항상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업계에선 2016년 갤럭시노트7 화재로 비행기 반입 금지품목으로 정해졌을 때를 중요한 위기의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삼성은 더 완벽해진 갤럭시노트8로 재기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2016년 29조24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이듬해인 2017년 53조6500억원으로 올라섰고, 2018년 58조8867억원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은 바로 이때 나왔다.
증권가에선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지난해 6조6567억에서 5배가 넘는 34조원 규모로 전망하고 있다. 연 60조원에 육박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지만 빠른 회복세다. 매출은 사상 최대인 2022년 수준의 300조원을 예측한다.
국내에선 평택 공장의 네번째 팹인 4공장(P4)과 5·6공장(P5·6)의 공사가 쉴 새 없이 진행 중이다. 해외에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170억달러(약 21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 건설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초미세 4나노 공정의 반도체가 양산 될 이곳은 올해 가동에 들어간다. 미국 현지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아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이 3배 이상 벌어진 TSMC와 한판 승부를 벌일 핵심 거점이다.
커지는 생성형 AI 시장에 맞춘 삼성의 GDP(GAA·D램·패키징)전략도 올해 본격화 된다. 3나노 GAA 2세대 공정으로 시스템반도체 영역에서 승부를 봐야한다. 여기에 첨단 패키징 공정으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쌓아야 하는 게 과제다. 파운드리는 이 회장이 직접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공표한 사업이다.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아직 TSMC와의 점유율을 유의미하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초 AI 폰 '갤럭시S24' 흥행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과제다. 혼자서 성공하기 힘든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 독불장군 애플과 달리 인텔·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대 협력라인을 구축해 가며 공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간 플래그십 출하량을 두 자릿수 키우고, 시장 성장률을 상회하는 스마트폰 매출 성장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모든 IT 기기를 하나로 묶어 앱 하나로 통제하는 '스마트싱스' 청사진과 세계 보급률 1위 TV 플랫폼으로 스트리밍 시장을 열어 수익을 내겠다는 거대한 계획도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은 스마트싱스의 이용자수를 2027년까지 5억명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스마트싱스는 전세계 모든 IT기기의 생활·주방가전을 하나의 앱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하나의 AI가 모든 기기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대를 꿈꾼다. 결국 모든 가전·IT 기업들과 끊임 없이 만나고 협력을 약속 받아 엮어내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현재 삼성전자와 연동이 가능한 기기는 3000개에 이르며, 협력사만 300개가 넘는다. 스마트싱스 이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스마트싱스 이용자는 5000만 명 늘어났다.
|
◇결단과 책임… 비즈니스 오너십의 힘
삼성이 자랑하는 중요한 자산 중 하나는 바로 폭 넓은 오너가의 인맥이다. 일명 'JY네트워크'는 매번 거대 기업과 확실한 신뢰를 쌓고 신속한 성과를 내는 데 중심이 돼 왔다.
지난해 5월 이 회장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회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테슬라와 차량용 반도체 및 부품 계약과 관련해 막바지 조율이 더뎌지던 때, 이 회장이 직접 머스크 CEO를 만나면서 양사간 계약은 일사천리로 성사됐다. 자율주행용 반도체와 차량용 디스플레이·카메라 모듈 등을 공급하게 됐고, 올해는 테슬라와 삼성의 스마트폰 플랫폼 '스마트싱스' 간 협력도 알렸다. 이번 만남으로 'JY식 세일즈'가 전장용 시스템반도체의 영토 확장을 이끈 것을 넘어 삼성전자 여러 사업부의 사업 확장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엔비디아, 모빌아이 등의 고성능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주문을 따내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테슬라 외에도 당시 엔비디아·MS·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CEO들과 만나 긴밀한 협력을 논의했다.
앞서 삼성의 5G 네트워크 장비 사업 대형 계약 체결이나 신규 시장 진출 과정에는 항상 JY세일즈가 큰 역할을 했다. 통신장비 사업은 계약 규모가 크고 장기 계약이 대부분이다. 주요 기간망으로 사회 인프라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신뢰'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대규모 5G 장기계약, 2021년 NTT도코모와의 통신장비 계약 당시 이들 통신회사의 CEO와 직접 만남을 통해 협상을 진척시켰다.
이 회장 취임 후 주도한 첫번째 인수합병(M&A) 회사인 카오디오 회사 '하만'은 지난해 반도체 부진 속 삼성전자 실적방어의 일등공신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1700억원, 연매출 14조39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처음부터 잘 나갔던 건 아니다. 2016년 680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7년 574억원으로 급감했고 2019년 3200억원으로 회복 하는 듯 했지만 2020년 600억원으로 다시 주저 앉았다. 아'픈 손가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실패한 M&A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자동차 패러다임이 전기차와 미래차로 집중되던 2021년 5991억원으로 반등했다. 이듬해에는 8800억원으로 뛰었다. 지금 하만은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핵심이자, 디지털 콕핏(디지털 계기판)·카 오디오 분야 전세계 1등이다. 업계에선 유망사업을 알아보고 조단위 투자와 지속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힘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재계에서 2월 선고 이후 달라질 삼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저력은 결국 대를 이어 온 '기업가 정신'과 방대한 인맥을 통한 '비즈니스 수완'"이라며 "초거대 기업을 이끄는 무거운 책무를 수행하는 데에 온힘을 집중해도 복합위기를 이겨내기 어려운 판에 사법 리스크가 더해져 역량이 분산되선 안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