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전자 중심 개편 후 금융계열사 시총 성장 제자리
장석훈 삼성證 대표, 실적은 개선···글로벌 진출 미흠 '과제'
하지만 故 이 회장이 건재했을 당시와 현재 이 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그룹 내 금융의 입지는 차이가 크다. 삼성금융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생명은 국내 1위인데다가 삼성화재도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금융계열사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0조원 가까이 성장할 기간 동안 삼성금융계열사의 성장세는 기대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삼성금융 계열사 한 관계자는 과거 故 이 회장 당시를 떠올리면서 "삼성생명을 중시하셨다"고 전했다. 실제 故 이 회장은 1995년, 영업력이 뛰어난 삼성생명 설계사들을 직접 챙기며 힘을 실어줬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만해도 故 이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회장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개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보면 금융에는 힘이 많이 실리지 않았다는 평이 나온다.
앞으로 삼성금융계열사들이 주가 성장을 위해 풀어야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보험산업은 올 해 IFRS17(새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순익 하락이 예상되는데다가, 삼성카드는 카드업황 악화로 올 연말까지 실적 감소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최근 해외 투자와 글로벌 법인 성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만큼 순이익과 시총 성장세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시총은 2014년 5월 12일 204조 4514억원에서 이날 종가 기준 398조1844억원으로 193조 7330억원 증가했다. 2014년 5월 12일은 故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직후다. 같은 기간 삼성금융네트웍스(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 의 시총은 39조1384억원에서 31조8701억원으로 7조2683억원 줄었다.
◇맏형보다 아우가 커진 보험사 두 형제
삼성생명은 그룹내 맏형으로서 현재 삼성전자(8.51%)와 삼성화재(14.98%), 삼성카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총자산 규모로만 따져봐도 올 상반기 기준 삼성생명은 300조6000억원, 삼성화재는 81조4744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금리인상 여파 등 생보산업이 하향세로 돌아서면서 순이익 증가는 쉽지 않은 모양새다. 과거 삼성샘영은 전속 보험설계사수를 4만명 가까이 증가시키면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바 있다.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점유율이 2000년에는 40%가 넘었는데 2010년 이후로는 계속 하락세를 기록하면서다. 2010년 상장 당시 11만4000원 수준이던 삼성생명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으로 6만7500원이다.
삼성화재는 최근 '형보다 나은 아우'로 불리며 금융그룹 내서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올 상반기 1조2166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삼성생명이 순이익 증가폭을 50% 이상 올렸음에도 삼성화재가 전체 보험업계 실적 1위 자리에 앉게 됐다. 순익 증가 배경은 IFRS17(새로운 회계제도)이 올해 도입되면서다. IFRS17 체제에서는 수익성 지표인 CSM(보험계약마진)이 반영되는데, 특히 수익성 높은 보장성 보험 판매가 늘어날수록 유리하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경쟁력 있는 신상품 출시와 수익성 중심 포트폴리오 개선 전략으로 월 평균 신계약 보험료와 환산 배수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삼성화재의 역대급 실적에 주가도 상승세다. 실적 상승 기대감에 지난 9일 삼성화재 주가는 장중 25만3500원을 찍으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실적 발표 직전인 지난 11일에는 종가 기준 25만500원을 기록했다.
◇삼성금융그룹 내 아픈 손가락(?) 삼성카드
삼성카드는 카드가맹점수수료 인하 및 연체율 상승에 따른 대손충당금 비용 증가 등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원기찬 전 삼성카드 대표가 취임한 당시인 2014년 순이익은 6560억원이었으나, 4년만인 2020년에는 3987억원으로 40% 가량 줄었다. 앞서 가맹점수수료 인하와 함께 결제 시장에 빅테크가 새로운 플레이어로 떠오르면서 경쟁이 심화된 탓이다. 2020년 김대환 대표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삼성카드는 외형 성장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올 상반기 삼성카드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는데, 업계 평균 감소폭(12%)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다만 삼성카드는 아픈 과거(?)가 있다. 지난 2002년 신용불량자를 대거 발생시킨 '카드 대란' 당시, 삼성카드도 부실 위기에 빠졌다. 이를 구해준 곳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였다. 두 회사의 지원으로 삼성카드가 위기를 넘기긴 했으나, 이후 삼성금융그룹내에서 삼성카드의 적극적인 영업 공세 등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미 한 번 사고친(?) 경험을 토대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데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삼성증권, 배당사고 위기 극복했지만...보신주의는 아쉬움
삼성증권은 지난 8년 간 외형과 내실을 키웠다. 총자산은 2014년 약 26조원에서 작년 말 54조원으로, 두 배 불어났다. 자기자본은 3조원에서 6조원대로 증가해 업계 4위다. 당기순이익(4224억원)과 영업이익(5781억원)은 각각 78%, 246% 급증했다.
이 같은 성장 뒤엔 '위기'도 있었다. 2018년 초 유령 주식 배당사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일부 영업정지와 함께 전현직 대표는 해임과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구성훈 전 대표가 취임 한 달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신뢰도 하락으로 삼성증권 주가는 급락했다. '관리의 삼성' 브랜드에 치명상을 안겼고, 그룹 내 '미운 오리 새끼'란 말이 나왔다. 가뜩이나 이익 규모 면에서 보험·카드에 비해 증권의 존재감이 미약한데, 금융사고까지 터지자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이재용 회장은 장석훈 대표를 구원투수로 낙점했다. 2018년 7월 취임한 그는 삼성증권의 WM(자산관리)과 IB(기업금융) 등 균형 성장에 초점을 맞춰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특히 금융상품 개발, 판매, 사후관리 프로세스를 체계화하는 등 내부통제 기준을 강화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임기를 2024년 3월까지 3년 더 연장했다.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과 영업이익은 각각 4042억원, 5421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40%, 3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업계 1위를 차지했다. 다만 경쟁사 대비 추가 자본확충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다소 소극적인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 측은 무리한 외형 확대보다 리스크 관리를 통한 안정적인 경영에 방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삼성금융계열사들이 전문경영인을 통해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했지만 금융 지배력 또한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익성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삼성 금융 계계열사들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받아왔다"며 "이러한 점에서 자연스럽게 (삼성금융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와 같은 다른 계열사에 비해 위축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