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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족은 고대부터 훗카이도와 사할린, 쿠릴 열도에 걸쳐 광범위하게 거주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간 “일본은 단일민족 국가”라며 “아이누족을 소수민족이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선주(先住)민족과 원주민으로서의 아이누족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8년에서야 비로소 “아이누족을 소수민족으로 인정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2019년 4월 19일, 일본 의회는 아이누족을 원주민으로 명시한 “아이누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추진법(아이누 신법)”을 통과시키며 600년만에 이들을 원주민으로 인정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아이누민족을 선주민족으로 규정한 ‘아이누시책추진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수백 년 간 이어진 차별과 핍박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아이누족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에도시대,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마쓰마에번(松前藩)에게 아이누족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 교역독점권을 부여했는데, 마쓰마에번은 이를 이용해 아이누족에 불공정 교역을 강요했다.
물고기를 대량으로 포획해가고 산림을 훼손하는 등 마쓰마에번의 행태가 이어지자, 분노가 쌓인 아이누족은 1669년 ‘샤쿠샤인 봉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전통 무기를 사용하던 아이누족이 총·화포 등 신식 무기를 갖춘 마쓰마에번 군대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아이누족 수장이 살해당하면서 결국 아이누족에 대한 지배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이누족을 향한 탄압은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들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대 흐름에 편승해 제국주의를 받아들인 일본은 ‘개척’이라는 명목 하에 본격적으로 북방 진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이 이 시기 대표적인 아이누족 말살 정책이다. 일본은 아이누족의 전통적 생활양식인 수렵과 채집을 금지하고 토지를 몰수해 농업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아이누족에게는 토지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이 부여됐으며 이마저도 농작에 부적절한 불모지였다.
정부에 의해 강제된 일본어 교육과 창씨개명은 아이누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워버리려는 시도 중 하나였다. 아이누족이 사용하는 아이누어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급격히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2009년 2월 유네스코는 아이누어를 ‘심각하게 소실 위기에 놓인 언어’로 분류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10명만이 일상생활에서 전통적인 아이누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보호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이누족의 생활과 풍습을 파괴하고 일본과 동화시키려는 황국신민화 정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