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1년 반 전에 문을 연 카페 알러트 스페셜티 커피(이하 알러트 카페)는 보수적 왕국 사우디의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스키니진을 입은 바리스타들이 우유를 휘핑하고, 젊은 남녀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지난해 10월 사우디 정부는 ‘독신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데 실패했다’며 이 카페의 영업을 돌연 중단시켰다. 2개월 후 다시 문을 연 카페는 미혼 남성은 아래층, 여성과 가족 단위 손님은 위층을 이용하도록 분리했다.
알러트 카페의 영업정지 사건은 빈 살만 왕세자가 주창한 사회 개혁 시행 후 ‘이제는 허용됐다’고 생각했던 활동과 발언들로 나중에 처벌을 받게 된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제1 왕위 계승자 자리에 오른 이후 사우디에서 그동안 금지돼 왔던 공공음악회를 허용하고,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화관의 문을 다시 열고, 여성들에게 운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보수적인 사우디의 사회 분위기에 변화를 도모했다. 이 같은 사회 개혁은 글로벌 투자금을 유치하고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함으로써 석유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사우디 경제를 다변화하려는 ‘비전 2030’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 일부에서는 그가 반대파를 처단하기 위한 핑계로 이를 악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사회 개혁에 보수주의자들은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남녀가 함께 식사를 하는 행위라든지 여성이 스포츠를 즐기거나 공공연하게 춤을 추는 행위 등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 이처럼 역풍이 불자 사우디 정부는 여론에 밀려 전통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다 호텔의 남성 직원이 여성 동료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영상이 유포돼 결국 체포됐다. 리야드의 한 피트니스센터는 레깅스와 민소매 상의를 입은 여성 트레이너의 사진이 공개된 이후 폐쇄당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인들은 사회 개혁 약속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우디 출신의 이만 알후세인 유럽연합(EU) 외교위원회 방문연구원은 “사람들은 이제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 레드라인(한계선)은 어디까지인지 무척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사우디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사회 개혁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일부 사우디인들은 ‘퇴보’는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20대의 제다 시민 압둘라 와디는 30세 미만의 젊은층이 인구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사우디에서 음악과 예술·정치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은 이미 오래 전에 허용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세상이 바뀌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문턱을 넘었다”고 말했다.
반면 사회 개혁에 반대하는 제다 거주의 27세 여성은 최근 사우디에서 열린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콘서트에 대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죄악이다. 이를 공공연하게 진행하는 것은 당신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사우디 정부의 한 관리는 사우디 지도부가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사우디 국민들 사이에서 음악과 예술·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폭증하는 가운데, 이를 기회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기업들은 아직 변화하지 않은 사우디의 관습이나 가치관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