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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박정자(73)는 15일 서울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키 큰 세 여자’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작품에 관해 이같이 소개했다.
국립극단이 가을마당 두 번째 작품으로 선보이는 연극 ‘키 큰 세 여자’는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에드워드 올비의 작품이다. 고집 세고 까다로운 한 여자의 인생을 재치 있게 그려낸 연극으로, 박정자는 죽음을 앞두고 알츠하이머 증세로 기억을 잃어가는 90대 할머니 A를 연기한다.
박정자는 “50년 넘게 연극을 했지만 매일 홍역을 앓고 있다”며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빈 껍데기만 남은 듯한 느낌”이라고 이번 공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사법고시도 합격했겠다고 했다. 매 순간 긴장하고 그 인물만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관객은 쉽게 볼 연극이다. 약이 오르는데 어딜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연극 ‘침향’ 이후 7년만에 손숙(71)과 호흡을 맞춘다.
손숙은 A의 변덕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50대 간병인 B를 맡아 중년의 불안함과 담담함을 보여줄 예정이다.
손숙은 “오랜만에 정말 뭔가 하는 것 같다”며 “고3 수험생 같이 연습하고 있다. 연습하다가 ‘우리 합숙할까요’라고 농담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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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손숙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형 만한 아우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의지가 된다”며 “투정할 수 있는 동료나 선배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얘기했다.
연극 ‘키 큰 세 여자’는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인 세 여인이 만나 첫사랑에서부터 결혼, 자식과의 절연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한 여자의 인생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점차 파편화되고 소멸해가는 자신의 기억으로 인해 변덕과 심술이 끊이지 않는 90대 노인을 50대와 20대 여인이 간병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다 2막으로 가면 50대와 20대 여인이 90대 노인의 분신으로 등장해 한 사람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오가며 인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독특한 구성에 촌철살인의 유머가 더해져 죽음을 앞두고 지난 삶을 돌아보는 한 노인의 모습이 재치와 감동으로 그려진다.
특히 각각의 세대가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죽음’을 통해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삶의 유한함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행복’을 이야기하며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한 이병훈 연출은 “죽음과 삶에 관한 우울한 얘기지만 굉징히 재밌고 생명력 넘치는 작품”이라며 “재밌는 가운데 뭔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연출은 “한 이탈리아 영화에 ‘죽은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연극이 그런 내용”이라며 “죽음이 삶에게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 같은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모처럼 배우가 보이는 연극을 하게 됐다”며 “연극은 배우가 꽃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박정자, 손숙과 함께 할 수 있는 작품이 없을까 찾다가 여자의 일생을 다룬 이 연극이 떠올랐다”며 “국립극단이 표방하는 배우 중심의 연극 1호 작품이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10월 3~2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2만~5만원. 17세 이상 관람가.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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