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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나다] ‘길 만드는 여자’ 서명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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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08. 11. 06. 16:59

 제주를 한바퀴 돌때까지 올레 길을 만들겠다는 서명숙씨. '쭉-계속될 겁니다' 하는 손짓이 재미있다.
저자와의 대화-[제주 걷기 여행] 서명숙씨
“살아 있어 고마워서 걷는 거지요”
                                /글.사진= 제주 양승진기자 ysyang@asiatoday.co.kr

“자연과 말 걸기...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걸으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여자에게 기자가 왜 걷느냐고 우문(愚問)을 던지자 돌아온 답이다.

자그마한 키에 서글서글한 얼굴이지만 번득이는 눈과 머리에 질끈 두건을 두른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51)씨는 아직도 예의 그 전투모드를 벗지 못했다.

몸은 제주의 올레 길을 걷고 있지만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 편집장을 지내서인지 자연인이라고 하기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아직도 언론인이신 것 같은데요?”

갈대와 제주바다 원색을 예찬하는 서명숙씨.
“아니에요 이 일을 하고부터 이게 또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어요”하며 웃는다.

제주가 고향인 서명숙 씨는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바위틈이나 오름에 핀 들꽃처럼 야성미를 내뿜던 장본인이다.

그런 그녀가 삶의 이정표를 찍은 곳은 다름 아닌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순례 길)이었다.

800km를 걸으며 그동안 지지고 볶고 23년을 기자로 살아온 인생을 울컥울컥 토해 내며 걷던 길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왜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 짓을 할까”하는 의문점에서 출발해 “제주에 까미노를 만들겠다”는 화두를 붙들고 왔다.

그러기를 1년여만에 제대로 된 올레 길 10개를 만들어 그것을 잇고 늘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어찌 보면 길 만드는 여자다.

이달 말 11번째 올레 길을 열면 제주시 입성이 멀지 않았다.

밧줄이 계단...오름을 오르는 서명숙씨. 
“내가 두 다리로 걷고 자연을 볼 수 있다는 행복감이 밀려들면 그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어요”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의 저자인 서 씨가 책의 독자들과 함께 성산 일출봉이 가까운 제주 1코스를 걸으며 한 말이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한 순례는 제주 특유의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당근, 열무, 감자 밭이 시린 녹색과 어울려 환상을 자아냈다. 이따금 안개 낀 소와 말 목장을 지나고 흐드러지게 핀 들꽃과 하늘거리는 억새는 제주의 참 맛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서 씨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제주를 찬사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제주와 산티아고 길은 자연의 가공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이 같고, 다른 점은 산티아고 길은 900km 가까이 걸어야 바다를 만나지만 제주는 어디를 가든 늘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는 완만한 평화의 길입니다. 다른 외국처럼 급한 협곡도 아니고 인간을 위협하지도 않아요”

서 씨는 “올레 길을 걸으면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급한 현대사를 써 내려가는 대한민국에서 느리게 걷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한 것이 금새 후회스러워졌다.

“제주 올레 길은 가이드 앞에 가면 벌금이 1000원 입니다. 그만큼 천천히 가라는 얘기죠”
막상 올레 길을 걸으니 믿기지 않을 만큼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 오고 넉넉해진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게다.

서 씨가 제주에 올레 길을 내겠다고 나서자 지역주민들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먹고 살기 힘든데 보존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그럴 만도 했을 법하다.

“어떤 길도 근대화를 피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 길을 온전히 보존 하는 것은 근대화 보다 더 위대한 일이지요”

서 씨가 그리는 꿈은 여기에 다 함축돼 있다.

'작가와의 대화'에 초대된 독자들과 올레 길 순례에 나선 서명숙씨(맨앞).
“싸움 아닌 싸움, 설득 아닌 설득을 하며 없어진 길, 모르는 길을 살려냈더니 이제는 제주사람들이 직접 와서 걸어본다”며 오히려 좋아들 한다고 한다.

제주에 와서 차량으로 관광지만 휑하니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그 관광지를 천천히 걸어서 연결해보면 좋겠다는 것이 서 씨의 바람이다.

“파도소리, 물빛, 바람, 억새 몸짓 그리고 수많은 꽃이 있는 제주는 언제나 원색입니다. 그 길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서 씨는 오늘도 묵묵히 올레지기를 자처하며 그 길을 걷고 있다.

독자들과 사이가 너무 벌어지자 잠깐 동안 길옆에 걸터앉아  환하게 웃는 서명숙씨.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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