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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갈등넘어 통합으로] ‘혐오·비방·조롱’의 콘텐츠化…“사회가 병들어간다”

[대한민국 갈등넘어 통합으로] ‘혐오·비방·조롱’의 콘텐츠化…“사회가 병들어간다”

기사승인 2024. 06. 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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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만연한 갈등, '혐오팔이' 시대<1>
지역·성별·세대 간 갈등 부추겨
루머, 팩트체크 없이 내용 짜집기
전문가 "혐오 조장·갈등 부추겨"
"상대방 인정하는 관용 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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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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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인구)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 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

"(지역마트에서 구입한 젤리를 맛본 뒤) 할매 맛이다. 내가 할머니 살을 뜯는 것 같다."

"몸매 좋아서 인기 많을 거 같다. (AV 배우로) 꼭 데뷔해 달라. 진짜 톱배우가 될 수 있다. 내가 도와주겠다."

대한민국이 막말과 조롱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각종 SNS와 온라인 플랫폼의 비약적 발전으로 누구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할 수 있게 됐고, 조회수와 관심이 돈으로 연결되다 보니 품격을 잃고 타인을 폄훼하는 게 일상이 됐다. 이 같은 '막말·조롱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우리 사회 지역·성별·세대를 가르는 갈등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만큼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지난달 경북 영양군을 방문한 뒤 올린 영상의 '막말' 한 번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고 현재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코미디'를 빙자해 지역 비하, 자영업자 조롱, 노인 혐오까지 담은 콘텐츠로 그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를 다 날렸고, 구독자는 318만명에서 294만명으로 약 24만명이 빠져나갔다.

콘텐츠 업계 안팎에서는 피식대학 측이 날린 실질적인 손해가 최대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유튜브 활동을 중단하면서 주간 조회수가 최대 3000만회 이상에서 150만회까지 줄었고, 유료광고 진행도 하지 못하고 있다. 논란 이후 군위군은 예산 7200만원을 들여 피식대학과 함께 진행하기로 한 지역 홍보 계획을 전면 취소하기도 했다.

특정 대상을 아무렇지 않게 비방하는 '막말' 콘텐츠는 비단 피식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한 이미지와 품위 유지를 미덕으로 삼던 일부 연예인들마저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혐오 대열에 합류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방송인 이경규씨는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진돗개가 동물보호법이 정한 입마개 의무 맹견 품종이 아님에도, 미착용을 반복 지적해 "특정 품종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결국 사과했다. 이씨의 콘텐츠는 '존중 냉장고'라는 이름으로 업로드됐는데,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한 것으로 드러나 실제 '존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19일 '노빠꾸 탁재훈'에선 일본 유명 AV 배우가 출연해 함께 출연한 20대 아이돌에게 "일본 AV 배우로 데뷔하라. 도와주겠다"는 발언이 아무런 여과 없이 웃음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목을 끌기 위해 범죄가 될 만한 이야기를 검증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근 한 유튜버가 '정의구현'을 앞세워 20년 전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피해자 동의 없이 공개해 논란이 되는가 하면, 또 다른 유튜버는 자신이 당한 전세사기를 다음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일명 '폭탄 돌리기'를 시도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가 결국 삭제하기도 했다.

갈등기획 그래픽
◇"'사이버 렉카' 본다" 71%…확대된 '혐오 정서'

전문가들은 일반인부터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가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사이버 렉카란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견인차를 빗대어 루머에 대한 확인 대신 조회수를 노린 선정적 제목과 내용 짜깁기를 자행하는 채널을 뜻한다.

문제는 사이버 렉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대~50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2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연예인 등 유명인의 사건·사고를 다룬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를 본 사람은 71.4%였다.

이들은 사이버 렉카 콘텐츠를 보는 이유로 △제목·썸네일이 눈길을 끌어서(59.2%) △정보를 빠르게 알려고(34.3%) △상세한 내용을 알려고(31.1%) 등을 꼽았다. 사이버 렉카가 가공한 정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이버 렉카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혐오 정서'가 전반적인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 갈등이 주원인…자정 필요"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 소비가 사회 갈등으로 연결된다는 지적과 함께 이미 사회 저변에 깔린 '혐오와 갈등'이 '사이버 렉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신행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사이버 렉카가 악의적 표현을 사용할 경우 댓글 생산이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 온라인에서 사회적 혐오 대상으로 삼는 대상들을 다룰 때도 악플 생산이 더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해당 연구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혐오 정서가 사이버 렉카를 통해 반향되며 증폭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며 "악플을 조장하는 콘텐츠의 특성은 공격 대상을 악의적으로 다루는 '직접 방식'이 아닌,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요소를 자극해 사용자들의 적대적 의식이 발현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라고 분석했다.

김창남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사회적으로 갈등도 많고, 경쟁도 심해지는 등 살기 각박해지면서 전반적으로 혐오 콘텐츠가 과거보다 심해지고 있다"며 "한발 물러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용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또 시민단체라든가 학계 등에서 갈등을 완화하는 운동·교육·계몽 등이 필요한 시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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