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40년 봉사 여정의 종지부…최상숙 “따뜻했던 나날들의 연속”

40년 봉사 여정의 종지부…최상숙 “따뜻했던 나날들의 연속”

기사승인 2023. 12. 15.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갈 곳 없는 어르신께 음식 대접해 선행 시작
소외된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과 배려 나눔
마지막 봉사까지 성료…40년 여정에 마침표
최상숙 40년간의 봉사활동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최상숙씨(71·여)가 40년간의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봉사로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빵을 만들고 있다. /정재훈 기자
"저를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그 원동력으로 지금까지 봉사를 해온 것 같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주민센터. 현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최상숙씨(71·여)에게 40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는 소감을 묻자 "마음의 풍요"라고 답했다. 짧은 답변이 자신만의 봉사 활동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했다.

30대부터 타인을 위해 헌신한 그의 머릿결은 어느새 하얀 백발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이번 나눔 행사를 끝으로 오랜 봉사활동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날 최씨는 비인가 시설에 자신이 직접 만든 빵을 나눔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40년 전부터 독거 어르신과 지역 취약계층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나눔 봉사를 몸소 실천해왔다.

주민센터에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최씨는 오븐에 한차례 구운 빵을 꺼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 찬 센터 안에는 봉사자들이 다음 차례 들어갈 빵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최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반죽부터 오븐에 빵을 넣기까지 제빵에 여념이 없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묵묵하게 빵을 완성했다. 그는 포장까지 완료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최씨에게 "수고했다"며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봉사자들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최상숙 40년간의 봉사활동5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최상숙씨(71·여)가 40년간의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봉사로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빵을 만들고 있다. /정재훈 기자
◇갈 곳 없는 어르신께 음식 대접…40년 자원봉사로 이어져

오랫동안 봉사해 온 이들처럼 최씨도 자원봉사의 시작은 작은 선행에서 시작됐다.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최씨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최씨는 1983년 어느 날 산책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큰아들 내외를 위해 전 재산을 주고 상경했다는 할아버지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큰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원 하나만으로 가진 전부를 내줬지만, 며느리와 손주들의 재촉에 결국 집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됐다.

최씨는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마음만은 참 따뜻한 하루를 보냈다고 기억했다.

다음 날에도 할아버지는 오갈 곳 없이 뒷동산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최씨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삶아주기 시작했다.

최씨의 작은 인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그 규모도 커져만 갔다. 매달 정기적으로 두 번씩 뒷동산에서 솥을 걸고 김치와 열무김치를 곁들여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했다. 정월대보름이면 오곡밥도 지어 부모님 모시듯 정성스럽게 어르신들의 끼니를 책임졌다.

둘째 딸을 포대기로 업고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음식을 장만했던 최씨에게 봉사는 삶의 원동력이자 즐거움이었고 그래서 늘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따뜻한 미소로 어르신들을 맞이했다.

최씨의 따뜻한 선행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어느덧 동네잔치로 자리 잡았다. 15명이었던 어르신들은 30명을 넘어 50명까지 늘어났다. 어르신들에게 최씨의 음식은 곧 공경과 사랑이었다.

늘어난 것은 어르신들만이 아니었다. 최씨의 사연을 들은 이웃들이 자원봉사자로 그와 함께하며 어르신들의 곁을 지켰다.

예상왕래(禮尙往來)의 표본으로 거듭난 최씨의 인심은 마을 전체를 온기로 채웠다. 최씨의 헌신에 고마움을 느낀 어르신들은 최씨네 대추나무에 농약을 뿌리거나 집안의 전구를 갈아주곤 했다.

최상숙 40년간의 봉사활동1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최상숙씨(71·여)가 40년간의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며 동료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날개 없는 천사…경계 없는 사랑 나눔 행보 펼쳐

최씨는 손수 만든 빵과 쿠키, 케이크를 들고 인구 50만 인구가 사는 은평구의 시설과 비인가 시설을 찾아 다니며 나눔 봉사를 실천했다. 가끔은 독지가들에게 지원받은 생선 2박스와 고기 100근을 들고가 통 큰 선행을 이어갔다. 이는 지역 사회에서 인기 폭발이었다.

최씨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선행을 펼치기 위해 제과·제빵 봉사단체 금빛회를 만들었다. 금빛회 창단 당시 5명이었던 회원들은 120명까지 늘어났으며, 최씨는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회장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 평회원으로 봉사활동을 지속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즐거움과 행복이었다고 말하는 최씨는 매달 1회 또는 2회 5시간씩 꾸준히 봉사한 결과,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2000시간이 넘는다.

그의 특별한 행보는 암 투병 중에도 이어졌다. 최씨는 교도소에서 출소해 갈 곳이 없는 무의탁 출소자나 정신질환 보호관찰대상자와 보호관찰자를 보호하고 숙식을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에서 투병 중에도 사랑의 손길을 펼쳤다.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를 비롯한 미성년자 대상 범죄자들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대상이 된다.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는 전과자들에게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최씨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전자발찌를 찬 보호관찰자를 자신이 운영하는 제조회사 직원으로 채용했다. 또 강력범죄 출소자 재활시설인 '금성의 집'에 입주한 출소자들을 위해 약 200평의 농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직접 농산물을 재배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립과 갱생의 길을 열어줬다.

최씨는 "한순간 법을 위반해 중형을 받아 보호관찰 출소자가 됐지만 이분들도 사회의 일원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국가에게 모두 떠넘길 것이 아니고 또 우리가 따가운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최씨는 1986년 6월에 염보현 전 서울시장의 지역사회 발전 유공 기여로 표창장을 받았다.

또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자원봉사 활성화에 기여한 공적으로 표창을 수상했다.

최상숙 40년간의 봉사활동11
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최상숙씨(71·여)가 40년간의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봉사로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빵을 만들고 있다. /정재훈 기자
◇"매일 보람찬 순간이었다"…아름다운 봉사 여정의 마침표

행사가 끝난 뒤 최씨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최씨는 "둘째 아이를 낳고 일년 뒤 유모차를 끌고 연천중학교 앞을 지나는데 삼삼오오 모인 독거어르신들을 보며 마음이 찡했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닭을 푹 고아 닭칼국수를 드렸는데 그 계기로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봉사는 제 마음을 풍요롭게 해줬다"고 회상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최씨는 "지금 청년들이 봉사의 계승을 받아야 하는데 먹고 살기 바쁘니 재원이 들어가는 봉사를 꺼려한다"고 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렇게 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대관해주지만 소정의 재료비라도 지원이 있으면 청년들이 더 많이 봉사에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록 나이가 많아져 육체적으로 하는 봉사활동은 멈추지만 죽기 전까지 어떤 봉사를 계속할지 생각할 것"이라며 "암이 완전히 사라져서 고운 한복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편안한 여행을 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지금까지 남을 위한 자원봉사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