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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유즈루'가 일본을 대표하는 창작오페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일본 내에서 수많은 제작진과 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된 횟수가 순차적으로 쌓여 왔다는 점에 있다. 또한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일본오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5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 십 차례 해외에서 공연됐다. 이쿠마 단은 처음부터 이 작품을 세계무대를 겨냥한 일본오페라로 기획하고 작곡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서구의 오페라하우스가 자체적으로 공연할 정도로 이 오페라가 인정받은 이유는 지고지순한 사랑과 돈 앞에 이성을 잃은 인간의 탐욕, 학으로 대변되는 순수한 자연과 인간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대립이라는 보편적인 주제 때문이다.
'유즈루'는 오늘날에도 일본의 다양한 오페라단체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필자는 동아시아 오페라 연구를 위해 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 공연된 '유즈루' 공연을 찾아가 관람해왔는데, 이번에는 유서 깊은 일본의 민영 오페라단인 후지와라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유즈루'를 보고 왔다. 이 작품에는 10명 정도의 어린이 합창단을 제외하고는 단 4명만이 작품에 등장한다. 소규모 출연자에 무대 또한 주인공 부부가 사는 산골의 오두막이 전부여서 상당히 단출한 무대를 유동적으로 꾸밀 수 있다. 이번 오페라에서도 고전적인 원근법이 적용된 무대 위에 부부의 집을 상징하는 일본식 가옥만 세워졌다. 초반에는 이러한 무대가 너무 간단하다 여겨졌으나 궁박한 산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 원형에 충실했기 때문에 성악가가 불필요한 움직임을 할 필요가 없었고, 무대나 객석이나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츠지 이와타의 연출은 이처럼 작품의 원형과 전통에 충실한 형태로 전개됐다. 주변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오직 주인공의 번민과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남편의 탐욕에 희생되는 여인의 가련함, 이와 대비되는 눈 내리는 산골의 서정적 풍경과 아이들의 천진한 합창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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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순박하지만 미련한 남편 요효 역할의 테너 다쿠야 후지타, 그를 충동질해 학 아내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지인 운즈 역의 바리톤 히로유키 에하라, 소도를 노래한 베이스 타로 시모세 등도 제 몫을 다해 줬다. 특히 히로유키 에하라는 현재 유명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어서 그를 응원하기 위한 팬들의 환호성이 매우 컸다. 작품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정도라면, 이러한 인기인의 캐스팅이 창작오페라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쿠마 단이 작곡한 음악은 일본 전통선율을 가미한 가운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관현악법을 구사하고 있다. 마이쿠 시바타가 지휘한 테아트로 질리오 쇼와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잘 살려 연주했다. 특히 운즈의 카바티나에서 현악의 피치카토와 플루트, 오보에의 오블리가토(보조하는 조주(助奏))가 일품이었다.
작곡가가 밝힌 대로, 오페라 '유즈루'에는 세계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를 창작하고 싶다는 바람이 강하게 담겨있다. 이번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공연에서도 봤듯이 그 프로젝트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공연예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유즈루'는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도 모른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