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최준선 칼럼] 마르크스 사회주의 망령의 회생가능성 경계해야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3070500161544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07. 05. 17:00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근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진보경제학은 어떻게 한국을 망쳤나』(백광엽,  2023, 미래사)를 읽었다. 이 책은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헛발질을 맹렬하게 추적하고 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피할 수 없는 보편의 법칙에 따라 전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역사 전개의 필연성이란 가설 자체가 실제로 성립하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이 '보편의 법칙'에 따르면 봉건적 질서 다음에는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는 자본주의 시대가 온다.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가 공동저술 해 1848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한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계급투쟁을 통해 무계급 사회가 출현하며, 이런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므로 이런 방향으로의 사회 발전을 겨냥한 일련의 행동(프롤레타리아 혁명 등)을 권장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 과정,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적 모순과 그 멸망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라 주장했다. 원시공산제→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현대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끝없이 계급투쟁을 지속하며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이처럼 계급투쟁에 기반하여 발전해 온 역사를 인류의 전사(前史)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면 계급투쟁이 소멸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고 보았으며, 사회주의를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전라북도 고창 사람 백남운(白南雲, 1894~1979)도 역사발전에 있어 '보편의 법칙'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도 원시공산사회→노예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라는 보편적 역사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다고 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가 계급의 부상이 봉건적 질서를 뿌리 뽑고 경제적 진보를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찬양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자본가 계급 내 경쟁이 격화되면서 그들의 이윤은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자본가는 노동자를 더욱 강도 높게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나 이런 소위 '이윤율 저하의 법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가치설에 근거한 착취설은 한계효용에 근거한 가치론에 의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대중을 선동했다. 그런 선동의 효과는 막대했다. 20세기 최대의 실패작인 '공산주의' 실험에 따른 엄청난 고통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공산화에까지 이르진 않았더라도 근대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자본가 또는 사업주와 조직된 노동자 사이에 격렬하고 폭력적인 투쟁이 발생했다. 한국·프랑스와 같은 선진 산업국가에서도 폭력적인 노조 활동이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산업화가 진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살아있을 때든 그 후든 계급혁명이 성공한 적은 없다. 기이하게도 공산주의 혁명은 1917년 농업국가인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당시 러시아는 전체 고용에서 농업부문이 무려 80%를 넘는 나라였다.

어떻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측한 '필연적'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이 대부분의 고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오데드 갤로어(Oded Galor) 브라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한 가지는 산업화된 국가가 혁명의 위협에 자극을 받아 계급 간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투표권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부를 재분배할 권력을 확장했을 뿐 아니라, 복지국가의 부상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지금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문제다. 

다른 한 가지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을 막는 데 결정적인 방화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생산과정에서는 모든 자원 중 인적자본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기업들은 '인재 모시기'에 사활을 건다. 반도체·배터리 같은 첨단기술 분야, 메이저 자동차 제조업체 간의 피 터지는 경쟁에서 인적자본이 기업 흥망의 열쇠다. 기술 확보에 실패하면 기업은 바로 망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는커녕 인재 확보와 교육 및 기술에 대한 투자에 집중한다. 이와 같은 추세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적자본의 가치가 잠식되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이 노동자를 더 모질게 착취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추측과는 정반대다.

갤로어 교수의 위 두 번째 가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무산된 이유를 더 잘 설명해 준다고 필자는 믿는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의 이윤율은 더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노동자의 임금도 오르기 시작했고 경제는 점점 더 발전했으며 나누어 가질 파이는 커졌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계급투쟁은 점점 멀어지게 됐고, 그의 주장은 빗나가고 말았다.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들도 더 많은 성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노동자도 교육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또 자본을 빌려서 사업을 하는 변신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찬양하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기대는 무산됐다. 다만 아직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험하겠다고 덤빈다. 한국에서도 무모하게 진행됐던 지난 정권의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은 채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지하고 무모한 정치인의 선동과 권력을 추종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모하에 사회주의 망령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