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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N번방’ 떠오른 우울증 커뮤니티…“그루밍 성범죄 온상”

‘유사 N번방’ 떠오른 우울증 커뮤니티…“그루밍 성범죄 온상”

기사승인 2023. 05. 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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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지배에 취약한 우울증 청소년들…온라인 성범죄 대상으로
전문가 "경찰, 온라인 성범죄 위장수사 범위 제한 말고 넓혀야"
경찰청
온라인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들이 그루밍(길들이기)에 노출될 위험이 큰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 강남에서 10대 여학생 A씨가 자신의 극단적 선택 장면을 SNS로 생중계한 사건이 일어난 뒤 숨진 학생이 이용했던 우울증 갤러리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등 '그루밍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으로 지배'(그루밍)한 후 성폭력을 가하는 범죄이다. 가해자들은 우울감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채 온라인에 털어놓거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우울증 청소년을 표적으로 삼아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들은 가정사나 개인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들은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타인을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어 심리적인 지배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전문 성범죄 상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범죄자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성장 중인 미성년자를 쉽게 속여 접근한다"며 "특히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은 낮은 자존감 등 여러 취약함이 있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자가 취재한 결과, 우울증 갤러리 뿐만 아니라 트위터, 카카오톡 등 SNS 상에는 우울증 청소년을 노리는 것으로 의심되는 게시물이 아직도 버젓이 게재돼 있었다. 우울증 갤러리에는 '여자들만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아이디를 남겨달라'라는 글과 같이 개인적 연락을 유도하는 게시물이 게재됐다. 또 '성적인 영상을 올린 여자 이용자의 SNS 계정을 공유한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트위터와 카카오톡 오픈(익명)채팅방에는 '우울증 대화상대 있나요', '08년생 우울증 친구 구함'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반복해 올라왔다.

경찰은 현재 전담팀(TF)을 구성해 우울증 갤러리와 관련한 각종 범죄 의혹을 살피는 중이다. 경찰이 TF를 꾸린 지 하루만인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학 강사로 활동하던 30대 남성이 지난 2021년 우울증 갤러리를 통해 만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뒤 돈을 지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달 28일 해당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신대방팸'으로 불리는 20대 남성 4명을 미성년자 의제 강간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020년도 말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한 다세대주택을 근거지로 삼고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10대 여성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지난 1일엔 강남에서 10대 여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할 당시 함께 있었던 20대 남성 B씨가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B씨는 해당 여학생과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심신미약 상태의 미성년자가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되는 환경이 만연해진 배경에는 최근 우울증 청소년이 증가한 것도 존재한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2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중·고생 10명 중 3명은 최근 1년 간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난 6월 통계 분석 결과 2021년 10대 청소년 우울증 진료환자는 5만7587명으로, 4년 전인 2017년(3만273명)보다 90.2%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그루밍 성범죄가 급속 확산하고 있는 만큼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예방센터를 운영하는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은 낮은 자존감 등 여러 취약함이 있어 성범죄 예방 교육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자 성범죄 방지를 위해) 현재는 제한적인 경찰의 온라인 커뮤니티 위장 수사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면서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협력시스템을 만들어 온라인 공간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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