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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맥베스’ “완성도 높은 상징적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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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5. 02. 13:29

파비오 체레사 상상의 세계 속 양준모·임세경 등 성악가들 활약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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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스'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2023년은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이한 해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올해 베르디 오페라 중 세 편을 신작으로 공연한다. 그중 첫 번째 오페라인 '맥베스'가 지난달 27~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맥베스'는 '나부코' 이후 지속된 베르디의 애국주의 오페라들과 스타일이 다른 작품이다. 무엇보다 베르디 오페라에서 벨칸토 오페라를 벗어나는 혁신적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오페라의 서곡은 특별하다. 마녀들을 상징하는 f단조의 기묘한 도입부는 젊은 베르디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이후 그의 오페라가 지향했던 바를 말해준다.

개막공연에서 반주를 맡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이브 아벨의 지휘 아래 독특한 선율로 시작하는 이 서곡부터 훌륭하게 표현했다. 이브 아벨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욕망과 헛된 망상이 빚어낸 비극을 처절하게 음악적으로 그려냈다. 경기필은 현악부터 관악에 이르기까지 무리 없는 연주력으로 성악가들의 노래를 뒷받침했다. 특히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후반부에도 흐트러짐 없는 집중력이 빛났다.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는 작년 국립오페라단의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에서 상당히 개성적인 무대를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베르디 작품인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에서 그는 12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을 다루면서도 매우 밝고 현대적인 무대와 의상을 선보였었다. 그의 무대는 상징적인 요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번 작품도 다양한 상징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움직였다.
'맥베스'는 4막이지만 전체 작품 안에서 10번 가까운 장면 전환이 필요할 만큼 무대구성이 복잡한 오페라다. 이것은 이 작품이 쉽게 공연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번 오페라에서는 거대한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조형적 구조물과 무대를 분할하는 투박한 벽면이 전부였다. 다양한 장면의 변화는 의자와 테이블 등 소품을 활용해 단순하게 처리했다. 조명과 상징적인 소품 활용을 적절히 한 덕분에 무대가 단조롭거나 장면 전환이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연출가도 그 부분을 의식한 듯 극의 진행에 따라 달라지는 맥베스 부부의 의상 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맥베스 부부의 지위가 높아지고 그릇된 판단이 거듭될수록, 그들의 의상은 눈부시게 호화로워지지만 손과 옷에 묻은 핏빛은 점점 진해진다. 왕이 된 맥베스는 황금빛 시퀸이 번쩍이는 던컨 왕과 같은 가운을 입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운명 또한 던컨 왕과 같으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실제로 같은 모양의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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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스'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여러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았던 이날 공연에 더욱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성악가들의 활약이다. 타이틀 롤을 맡은 바리톤 양준모는 2016년 서울시오페라단에서도 맥베스를 맡아 훌륭히 소화한 바 있다. 때문에 그가 이 역할과 어울리는 성악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날의 양준모는 7년 전 맥베스와는 또 다른 맥베스를 보여줬다. 불안에 쫓기는 초조한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헛된 욕망과 죄의식, 분노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그의 가창은 놀라웠다. 특히 4막에서 체념의 아리아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를 노래할 때는 인물과 일체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프라노 임세경은 중.저음이 맑고 또렷한 성악가로 레이디 맥베스의 강렬한 무게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대신, 특유의 날카롭고 예민한 음색을 바탕으로 고유한 레이디 맥베스를 창조했다. 특히 고음으로 갈수록 폭발하는 성량은 어떠한 레이디 맥베스에도 밀리지 않는 강한 존재감을 선사했다.

맥베스 부부 외에도 방코우 역의 베이스 박종민은 벨벳 같은 질감과 풍부한 성량으로 작품의 격을 높였고, 막두프를 맡은 테너 정의근은 최근 본 그의 공연 중에서 최고였다 할 정도로 안정되고 빼어난 가창을 들려주었다.

이날 공연에서 아쉬웠던 점 한 가지를 꼽자면 여성 합창이라고 하겠다. 노이오페라코러스는 성실하고도 모자람 없는 연주를 했으나, 마녀들의 음산함이 담겨야 할 1막의 합창에서 젊은 여성들의 앳된 음색만이 들려와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애써 잡아가던 분위기가 무너졌다. 3막 마녀들의 동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연주단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오페라 생태계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위 거대한 눈동자는 맥베스 부부의 악행을 빠짐없이 지켜본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들을 삼켜버린다. 라캉의 '거울단계'에 따르면, 자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마녀의 저주, 레이디 맥베스의 부추김 탓이라고 하지만,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맹목적 나르시시즘으로 거울에 비친 상상과 기만의 세계 속 자신의 모습을 자아와 동일시한 맥베스에게 있다. 그 거대한 눈동자는 맥베스가 바라본 거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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