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인텔 등 경쟁사 투자 가속
취업제한 논란 의식해 활동 자제
삼성그룹 전반 타격 우려 목소리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출소 이후 법무부가 가석방 명분으로 제시한 투자 활성화, 코로나19 백신 수급 등의 역할 수행을 위해 바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관련 상황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이후 두 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을 뿐 이렇다 할 공개 행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이슈를 둘러싼 경쟁사의 투자 가속화,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이어지며 경영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총수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이 부회장의 재판 부담이 가중되면서, 삼성 그룹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주 목요일 재판→3주에 한번 목·금 법원행
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부터 3주에 한번 꼴로 주 2회 재판을 받을 전망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회계부정·부당합병’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재판부는 해당 재판에서 외부회계감사법 위반 혐의 내용을 떼어내 삼정회계법인이 받고 있는 동일 사안 재판에 병합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은 3주에 한번 꼴로 목요일과 금요일 연이어 재판장에 나가야한다. 재판부가 관련 계획을 공지한 후 아직 확정 일정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오는 18일을 시작으로 매 3주마다 병합 재판을 진행할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관련 사안을 나눠 한 번에 두 개의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간은 단축될 수 있지만, 이틀간 재판에 매달리고 대응을 준비해야하는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검찰이 제시한 250여명의 증인 중 최근 겨우 10여명에 대한 신문이 끝난 상황으로, 1심이 언제 끝날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증인만 250여명에 이르는 데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3개 그룹 피고인 반대신문까지 합치면 1심이 내년 말쯤이나 끝날 수 있을지 더 길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TSMC·인텔, 거센 투자…SK·현대차 등도 미래 준비 ‘분주’
이 부회장의 재판 일정과 상관없이 반도체, 바이오 등 삼성의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의 투자 시계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삼성에는 부담이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대만 TSMC, 인텔 등의 투자, 시장 확장 행보가 거세다.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지목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창시한 TSMC는 세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의 업력으로 쌓은 노하우와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유럽에 이어 일본에서도 공장 증설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미국·유럽 공장 증설뿐 아니라 세계 9위 파운드리 기업 ‘타워 세미컨덕터’를 인수하면서 2위 삼성전자 자리를 넘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 산업 지도,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등에 대한 위기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출장을 마친 후 “현장 투자자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이 침묵한 사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해외 대형 행사 참석, 투자 결단 등을 통해 그룹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미국 바이오기업 CBM 투자를 단행하고, SK텔레콤 회장직을 맡는 등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힘을 싣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로봇개 ‘스팟’을 직접 소개하며 로봇, 차세대 모빌리티 등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웠다.
◇“가석방 신분으로 공개 행보 부담”…대선 이후 가석방 가능성
삼성 역시 이 부회장 출소 직후 3년 간 240조원 투자, 20조원 규모 미국 공장 증설 계획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굵직한 사안 발표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지 못한 것은 가석방 상태, 이에 따른 취업제한 논란 등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의 공개 행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도체 등의 거대 산업·수천개에 달하는 삼성의 협력사 등을 감안하면 총수의 행보가 시장에 주는 사인은 큰 파장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신분으로 자기 사업에 대한 활발한 행보를 펼치기에는 아직 부담이 클 것”이라며 “공개 경영 행보는 이 부회장의 활약이 부각된 백신 수급난 해결,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지원 같은 사회공헌, 상생 행보와는 성질이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사면설을 제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시국을 고려해 3.1절 사면을 단행하지 않았지만, 선거 이후 이 부회장을 비롯한 일부 정치·경제 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실시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