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홍제 회장 경영자질 강조
한국앤컴퍼니 차남 조현범,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지분싸움
효성家 막내 조현상 부회장 등극
조현준과 형제경영체제 갖췄지만 다툼 불씨남아
조 회장은 수십년 앞일을 내다본 걸까. 그의 걱정은 3세에 와서 현실이 됐다. 최근 재계 40위 한국앤컴퍼니는 장남 조현식(51)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49) 사장 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다. 같은 조씨 일가인 효성에서도 7년 전, 차남 조현문(52) 전 부사장이 장남 조현준(53) 회장을 수백억원대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현재 조현준 회장과 막내동생 조현상(50) 부회장이 ‘형제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분율 차이가 미미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
1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앤컴퍼니와 효성의 모태인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선대회장은 경영권 분쟁에 선을 긋기 위해 1970년대부터 세 아들(조석래·조양래·조욱래)의 특성에 맞게 주력 기업을 하나씩 넘겼다. 그는 자식들이 혹시나 ‘부잣집 아들 병’에 걸릴 것을 몹시 경계했다. 확실한 경제관념과 인성 등 경영자가 갖춰야 할 자질을 키우는 데 중점을 뒀다.
조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자녀교육관은 손자 세대에 와서 금이 갔다. 차남 조양래(85) 한국앤컴퍼니 회장의 자식들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손자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의 지분율은 1년 전만 해도 각각 19.32%, 19.31%로 거의 같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변수가 생겼다. 아버지 조양래 회장이 차남에게 지분(23.59%) 전량을 양도하면서 형제 간 균형이 깨졌다. 차남의 지분은 42.9%로 대폭 늘었다. 지난달 30일 두 사람은 주주총회에서 사내·사외이사 선임건에 대한 표 대결을 벌였고, 장군멍군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1일 한국앤컴퍼니 이사회 의장이 조현식 부회장에서 조현범 사장으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경영권 분쟁의 향배가 주목된다.
장남 조석래(86) 효성 명예회장의 3형제도 ‘형제의 난’을 피하지 못했다. 조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 조현문 전 부사장이 2014년, 친형인 조현준 회장을 검찰 고발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다. 한차례 후폭풍이 지난 뒤, 효성은 조현준 회장과 막내동생 조현상 부회장의 ‘형제경영’ 체제를 굳혀갔다. 지주사 ㈜효성의 지분 구조는 조 회장 21.94%, 조 부회장 21.42%다. 다만 경영권 분쟁 소지가 없진 않다. 두 사람 사이 지분율이 0.52% 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다. 아버지 조 명예회장이 지분(9.43%)을 누구에게 물려주느냐에 따라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물론 조 명예회장이 “형제 간에 싸우지 말고 형(조현준) 중심으로 뭉쳐 회사를 꾸려 나가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현 체제가 지속 유지될 것이란 게 재계의 시각이다.
‘한 뿌리’에서 시작된 오늘날의 두 그룹이 있기까진 선대의 가르침과 업적이 밑바탕이 됐다. 3세들의 조부인 조 선대회장은 1978년 경영일선에 물러나면서 세 아들에게 각각 다른 휘호를 하나씩 써주었다. 조석래 명예회장에겐 ‘숭덕광업(崇德鑛業,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을, 둘째인 조양래 회장에게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쉬지 말고 힘을 기르라)’을, 막내인 조욱래 전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 항상 재난에 대비하라)’이란 글을 써 경영 유훈으로 남았다. 공든 탑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법, 코로나19로 더욱 더 어려워진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 성장을 위해 정진해야 할 3세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
비단 ‘두 집안’만의 일은 아니다. 현대, 두산, 롯데, 금호, 한진家 등등. 국내 재벌가에선 형제 간 경영권 다툼, 이른바 ‘형제의 난’은 반복돼 왔다. 그 결말은 썩 좋지 못했다. 기업이 쪼개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을 낳았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분쟁은 기업으로선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한진家 3세인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남매의 난’ 과정에서 외부세력의 지분 매입으로 갈등을 키웠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권력다툼)은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고, 투기 세력의 유입으로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