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항공업계가 구조조정 중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이 매물로 나오면서 시작된 우리 업계의 시장 재편은 코로나19로 더 빨라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장에선 경쟁의 구도가 늘 바뀌지만 ‘블랙스완’처럼 예상치 못한 환경변화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9.11테러(2001)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 중국의 사드(2016) 보복에 이은 재팬 보이콧(2018)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감염병은 사스(2002)와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5)에 이어 2000년대 들어서만 이번이 네 번째다.
노력만으로 피할 수 없는 게 시장위험이다. 위험이 크면 수익성도 그만큼 높아야 한다. 그런데 항공에는 그게 없다. 10년 영업으로 쌓은 기업가치가 한번 악재로 모두 날아가는 수익구조다. ‘고위험-저수익’의 불균형이 흔치는 않으나 세계 항공업계엔 이미 공통된 시장현상이다. 여객의 증가세만 믿고 비행기를 띄우면 돈 번다는 건 이제 환상이 되었다. 더 심각한 건 시장의 축소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제작사들은 코로나19가 회복되어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진 못할 걸로 본다. 좌석 배치가 변하고 기내구조가 언택트 방식으로 바뀌어 운임이 올라 결국은 장거리 승객부터 줄어든다는 게 이유다. 대중화를 이끌던 항공의 경제성이 줄면서 시장은 30% 정도가 사라진다. 그동안 2035년까지 세계시장은 4.7%, 아시아지역은 7%대의 높은 연평균 성장률이 대세였지만 이것도 비관적 수치로 바뀔 것이다. 성장을 지속했던 우리 업계도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는 시장에는 자생적 질서가 작동한다. 파이가 커질 땐 시장참여자가 모두 이익을 향유하지만 줄어들 땐 그 반대다. 지금은 우리 업계가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를 생각할 때다. M&A는 시장참여자 간의 합병과 인수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 목적이지만 산업의 체질도 강화한다.
세계 항공업계의 경험을 생각하면 업계의 조류를 가늠할 수 있다. 미국에선 US항공, 노스웨스트항공, 컨티넨탈항공, ATW 등 대형사들의 파산으로 시장은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 항공의 ‘빅 3’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유럽에선 에어프랑스와 KLM의 합병, 독일 루프트한자의 스위스항공과 오스트리아항공의 인수, 영국항공과 스페인 이베리아항공의 합병 등으로 거대그룹들이 탄생했다. 모두 2000년대 들어 겪은 M&A 사례다. 심지어 유럽의 항공사들은 국적사의 지위까지 내려놓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 전체의 10%도 안 되는 협소한 국내시장을 가진 우리 국적사들은 국제노선에서 이들과 경쟁한다.
시장 재편을 촉발한 아시아나항공이 경영회복에 성공하려면 글로벌 시장흐름에서 비교우위를 찾아 포지셔닝부터 다시 해야 한다. 당장 부도위기를 넘기려면 정부가 신용 하락부터 막아줘야 한다. 자금이 바닥나고 있는 LCC업계에는 재난을 수습할 자금 수혈이 급하다.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지를 빨리 알려줘야 항공사들 각자 자금계획을 세울 수 있다. 물론 이런 지원들은 모두 업계에 구조조정의 기회를 주는 미봉책일 뿐이다. 항공업계의 위기를 지원하는 산은과 국토부는 이번 위기를 업계가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 27일 국토부는 임대료 감면, 연내 기금 지원 등 항공업계 지원안을 발표했다. 새로울 건 없지만 바람직한 조치다. 그런데 ‘항공산업발전조합’ 설립안이 생뚱맞다. 업계의 금융을 위해 지급보증서를 끊어주는 역할이라면, 지금의 금융시장과 지원제도로 가능하다. 정부는 왜 지금껏 그걸 미루면서 못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상부상조하는 보험처럼 업계의 돈을 거둬 관리하는 조합이라도 그건 옥상옥을 짓는 일이다. 항공사들은 정부에 운명을 맡기지 말고 각자 M&A를 포함해 장기적인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정부 지원으로 마음껏 체력을 키운 외항사들의 시장공략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도 좋은 기업 환경이 될 정책들을 짜내야 한다. 산업지원을 명분으로 조직부터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