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태하 찾기 하고 있어요. 방송도 다시 보고, OST도 계속 듣고 있죠. 아직 잘 못헤어나오고 있는데, 딱 오늘이 마지막이예요."
이상엽은 '마스터-국수의 신' 종영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박태하를 떠나보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자신의 텅 빈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상엽은 '마스터-국수의 신'에서 우정 사랑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박태하를 연기했다.
"전에는 그런 편이 아니었죠. 몇일 힘들거나 공허함만 있었다면, 이번에는 가슴이 답답해요. 비닐에 갇혀서 숨 못 쉬는 답답함. 그게 태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너무 가슴 아프게 죽어서, 만약 웃고 행복했으면 지금의 저도 밝아지지 않았을까요."
이상엽이 연기한 박태하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죄책감으로 채여경(정유미)을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다녀오는가 하면,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이상엽은 박태하의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사실 주문을 외웠어요. 그때는 태하의 마음을 강제 주입 했어요. 감독님과 밤낮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어느 순간 태하의 희생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받아들여지게 됐죠. 복수를 위한 아이들의 미친 질주를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보살피고 관찰하고 챙기지 않았을까. 부모의 사랑은 형용할 수 없고 따라갈 수 없는데 태하의 사랑은 흡사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그 어느때 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많이 생각났었다고 했다.
"친구들 생각이 엄청 났어요. 친구들이 처음으로 촬영장에 간식차를 보내줬는데 너무 고마웠죠. 태하는 이렇게 친구들을 위해서 사는데 나는 받기만 하네 그런 생각이 들고 돌아보니 미안했어요. 저는 늘 작품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느꼈는데 이번에는 여태껏 느낀 것들과 다르게 친구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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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앞서 tvN '시그널'을 통해 흥원동 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연기하면서 기존의 귀공자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연기자로서 좀 더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저한테 올 줄도 몰랐고 방송 전까지는 느낌이 안 살까봐 정말 겁이 많이 났었어요. 결국 '시그널' 덕에 '국수의 신'에서 텅빈 태하의 모습도 보여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겐 엄청 거름이 된 작품이죠. 안 해봤던 장르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미친 듯이 감정을 생각하고 몰입하면 뒷모습으로 서있기만 해도 보는 사람들이 느껴주는구나 그런 믿음이 조금씩 생기니까 좋아지고 재밌어 지기도 하고요."
이상엽은 '시그널' 김진우와 '국수의 신' 박태하라는 텅빈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자신도 감정소모를 많이 해야 했다.
"'파랑새의 집'(2015)에서는 정말 잘 뛰어놀았거든요. '시그널' 때 비우고, 이 상태에서 '국수의 신'하면서 더 비워내니까 제가 없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저를 다시 채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자신을 꾸준히 비워내고 또 채워가면서 진짜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이상엽.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백발이 되어도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싶어요. 자유롭지만 중후함을 잘 갖고 있는 그런 배우요. 이순재 박건형 선배님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오래도록 연기하면서 거기서 또 로맨스도 할 수 있는, 열정을 잃지 않는 배우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