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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동서냉전이 치열하던 1973년 미해군연구원이 발간한 '대전략 (Grand Strategy)'에서 콜린스(John M. Collins)는 다음과 같이 냉전 책략을 정의했다. 냉전은 국제긴장의 적극적인 상태로 전투 상황 없이 정치, 경제, 기술, 사회, 심리를 망라한 준군사적 또는 군사적 조치가 총동원되어 투쟁하는 상태를 말한다. 물리적 힘을 흉계와 사기가 대신하며 간접접근이 특징이다. 목표가 되는 국가를 압박하거나 이익을 훼손시켜 자국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차가운 전쟁이라는 의미처럼 냉전의 경직성과 폭력성은 외부로만이 아니라 내부로도 가해진다. 정치를 위시로 사회 각 부문을 왜곡시키고 국가의 정체성도 기형적으로 형성된다. 국민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언어가 폭력적으로 되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억제된다. 따라서 자율성과 창의성은 소거되고 쉽게 선동에 휩쓸리게 만든다. 그레이 존(grey zone)으로 표현될 만큼 국가 의지에 혼란을 겪고 있고 북한과는 준전시상태에 있는 한국사회가 받고 있는 도전이다.
탄핵 공방이 계속되는 와중에 양측은 모두가 법과 국민을 앞세우고 있다. 일부는 극단적으로 폭력화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냉전의 함정에 빠지면 정치투쟁은 격화되고 사회적 분열은 굳어진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 정상급의 선진국으로 다른 나라에 본이 되어야 할 나라다. 따라서 외신이 치킨게임으로 표현하듯 필사적인 정치투쟁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헌정 제도의 수호보다 정당의 집권 투쟁의 대리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
국내 뉴스, 산업계의 뉴스나 댓글 중에는 외견상은 애국이나 실제로는 분열과 충돌을 조장해 망국으로 유도하는 기만전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행위자의 국적이나 소속을 확인하기 어려운 메타공간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피아를 구분하기 어렵고 더구나 이견을 가진 상대를 "토착 왜구" 또는 "종북좌파 빨갱이"로 극단화해 적대감을 선동하는 것은 오히려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주는 일로 국익에 반하는 자해행위임이 자명하다.
당쟁사를 연구한 젊은 학자는 오늘날에도 정당정치가 엽관제를 불러오고 당리당략에 한정된다면 조선시대와 같다고 평가했다. 사회가 투명하고 유기적이면 허위와 부정이 눈에 띄지만 불투명하고 단절된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한국정치에서도 지인들끼리만 상부상조하는 연고주의로 정당은 대다수 국민과 유리된 존재가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젊은 세대에 이 같은 평가가 사실과 다름을 확신시켜 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고 할 것이다.
국민은 그 정도 수준의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는 그런 정치인들을 선택한 국민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국민의 역량은 정부와 정당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신뢰'라는 사회간접자본을 조성하고 국민에게 상황과 정보를 정직하게 전해주는 것은 권력 수임기관의 중요한 역할이며 유엔이 말하는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다. 국민의 역량을 선용하지 못하고 억누르거나 왜곡하는 국가들은 모두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고 국력이 쇠퇴하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맞았다.
압축성장이라는 표현대로 우리 사회는 단기간에 정치·경제상의 귀중한 발전 경험을 쌓아왔다. 극단적인 언동과 폭력행위가 배제되면 탄핵정국은 대한민국의 정치력과 지도력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 담겨있는 자유와 공동체 정신의 DNA가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박제화되고 형식화해 민주주의의 위기시대로 불리는 21세기 국제사회에 건강한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주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도전보다 어떻게 응전하느냐며 1933년 미국 대공황에 맞선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체를 과장하는 두려운 마음이다. 심리적으로 과도한 대외 의존성을 갖는 사회는 패닉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우리의 역량을 찾아 자신감을 갖고 도전에 응전할 필요가 있다.
1808년 프랑스군의 점령하 베를린학술원에서 피히테는 '독일국민에 고함' 강연을 하면서 젊은 세대에 독일의 부흥을 위한 역할을 부탁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과 친하고 위대하고 선한 일에 감격해 분발하기 쉽기 때문에 그들을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기성세대에는 여러분을 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힘을 주며 충고를 아끼지 말고 장래를 보장해 주라고 했다. 과거의 지식과 염려로 사적 이익에 물들지 않은 이들의 앞길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끝으로 피히테는 독일의 조상들도 여러분에게 요청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 있다고 생각해 주도록 요청했다. 어느 국가에나 기성세대와 지도층이 선조의 정신과 역사의 재판을 두려워할 때 나라의 미래가 열린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