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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폐 요건 강화, 증시 밸류업…“꼼수 합병 막을 감시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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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영 기자

승인 : 2025. 01. 22. 18:30

20년된 상장폐지 기준 대수술
3년뒤 코스피 상장 유지 시총 10배↑
지난해말 기준 199개 기업 퇴출 대상
전문가 "M&A 등 부작용 방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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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면 코스피 상장사 62곳, 코스닥 상장사 137 곳이 무더기 퇴출될 전망이다. 그간 기업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근근히 상장만을 유지해 오던 이른바 '좀비 기업'에 대해 금융당국이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시가총액이나 매출액이 늘지 않는 '성장성 제로' 상태의 좀비기업들이 다수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오면서다.

투자자 보호, 시장 안정성 등 정치적 요인으로 20년 넘도록 퇴출기준 강화를 꺼려했던 금융당국이 이 번에는 그 어느때 보다도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퇴출 기준 사정권에 들어온 상장사들은 주가를 부양하거나, 실적을 높여 매출액을 늘리는 등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써야할 시점이다.

일각에선 현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금융당국이 제대로 좀비기업을 퇴출 시킬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기도 하다. 자칫 시장의 파고만 일고 구조조정은 하지 못하는 용두사미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정책행보가 중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폐 요건 강화와 함께 국내 주식시장의 건전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보면서도 퇴출 대상인 기업들이 M&A(인수합병)를 통해 매출액을 부풀리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어 이에 따른 감시망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서 시총 500억원 미만인 기업들은 79개, 코스닥 시장에서 시총 300억원 미만인 기업들은 170개다. 이들 모두 정부가 발표한 상장폐지 기업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들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시총 500억원 미만 기업 중 일정실업, SHD, 제이준코스메틱 등이 가장 낮았다. 일정실업은 올 초(1월 2일) 기준으로 시총이 134억원에 불과하고, SHD와 제이준코스메틱도 각각 170억원, 173억원으로 모두 200억원 미달이다.

코스닥 시장에서 시총 300억원 미만인 대표 기업은 CNH, 엠에프엠코리아, 투비소프트 등이다. CNH 시총은 41억원, 엠에프엠코리아는 70억원, 투비소프트는 시총 93억원 등으로 모두 시총이 100억원 미만인 기업들이다. 이중 CNH와 엠에프엠코리아는 거래 중지 상태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도 미국 시장처럼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간 미국 시장에 상장했던 국내 기업 10곳 모두 퇴출당했다. 그만큼 상장할 수는 있으나,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1999년,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던 두루넷이 꼽힌다. 이 회사는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로 촉망받으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5년만에 퇴출당했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상장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 증시가 밸류업 하지 못했던 이유에는 그간 좀비기업 퇴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당국의 태도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상장폐지 요건 중 매출액 기준은 2003년 도입 이후 20년 넘게 유지됐다. 당시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기업의 매출액 기준은 각각 50억원, 30억원이었다. 시총 기준도 2009년 상향조정된 이후 15년째 유지 중이었다. 실제 시총과 매출액 요건을 따졌을때 지난 10년간 기준에 부합해 상장폐지가 된 기업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단계적으로 기준을 상향해 2028년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유지 시총 기준을 500억원으로 10배 상향하고, 코스닥 시장은 300억원으로 약 2배 높인다. 매출액 기준도 각각 300억원, 100억원으로 현행보다 6배, 3배씩 상향 조정한다. 작년말 매출액 기준으로 199개 기업이 퇴출 위기에 놓였다.

우리나라는 상장 진입 기업수 대비 퇴출 기업수는 1/4에 불과한 실정이다. 2019년과 비교하면 최근 5년간 한국이 17.7% 상장회사 증가율을 보여 가장 크게 늘었다. 하지만 주가 상승률은 높지 않다. 상장기업수 대비 시총은 미국이 22.5조원, 일본이 2.3조원, 대만이 2.0조원, 한국이 0.9조원으로 가장 낮다.

시장에 진입만 하면 퇴출시키기가 사실상 어려웠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상폐사유 발생해도 개선기간이 최대 4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심사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단점이었다. 작년말 기준 절차 장기화로 인해 상장폐지 심사를 받으며 거래 정지된 기업은 83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미국에 상장됐던 우리나라 10개 기업들이 모두 상폐 됐는데, 그만큼 해외 주요국에선 '상장은 쉬워도 유지는 어렵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실제 1994년 당시 1000대를 기록하던 코스피 지수가 30년동안 2500으로 2.5배 오르는 동안, 나스닥 종합 지수는 700선에서 19700대로 28배 올랐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미 퇴출기업에 대해 부실하게 운영했기 때문에 코스피 지수가 2배 밖에 오르지 못한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선 좀비기업의 빠른 퇴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건전성 회복도 중요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매출액과 시총 기준 미달 기업들이 상폐를 막기 위해 무리한 M&A를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정치권 영향으로 정책 일관성이 흔들린다면 또 다시 좀비기업 봐주기 논란이 일수 있어서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액투자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좀비기업을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면서 "재무구조가 약하고 문제있는 기업들을 퇴출시키는게 맞지만, 이번 상폐기준 강화로 시장 건전성을 회복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매출액이나 시총을 올리기 위해 M&A 등의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이 나올 부작용이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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